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노석순 데레사 수녀] 참된 부유함

종|교|칼|럼|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참된 부유함

  

저는 화초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의 작은 방에 하나 둘 화분을 모여왔습니다. 어느 것은 병이 들었거나 수명을 다한 것도 있습니다. 화초를 키우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만큼 성실하게 가꾸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가까이에서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 좋기에 욕심과 사치를 누리고 있지요.


화초를 바라보며 가꿀 때 제게 주는 묵상도 제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화초마다 저에게 원하는 것이 다르고 시기마다 요구하는 것도 다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민감한 눈길과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햇빛과 물만 주면 별 탈 없이 잘 자라주는 화초가 있는가 하면 저의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화초도 있습니다. 닦아주고 흔들어 주고 만져주면 자라는 것도 있고, 아무리 정성을 기울이고 기다려도 성장을 포기한 듯 변화를 보이지 않는 고집스런 화초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필요한 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언젠가, 제게 밀려드는 시급한 일과 제 자신의 문제로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 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와 함께 숨을 쉬고 있던 바이올렛은 시들어 갔고 뿌리를 지탱해 주던 흙은 딱딱해져 바늘 하나 설 자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막 태어난 아가의 주먹처럼 여린 봉우리가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분홍 빛깔과 보라 빛을 머금고……. 순간 저는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에 사로잡혀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저 생김새와 자태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지금에야 나왔으며, 화분 어디에도 없는 저 빛깔은 어디에서 만들어져 나왔는지, 그리고 꽃잎보다 여린 봉우리가 어떻게 딱딱한 흙덩이를 뚫고 나올 수 있었는지……. 물을 달라는 마지막 표현을 이렇게 아름답게 할 수 있는 바이올렛의 생명력에 목이 메이기도 했었습니다. 화초 하나의 생명력도 이럴 진데 하물며 한 인간에게 담겨 있는 생명력과 그 아름다움은 얼마나 크고 깊을까요?


어쩌다 한번쯤 화분에 영양분을 보충해 주기 위해 뒷동산에 올라가 낙엽에 묻혀 있던 영양 많은 흙을 가져왔습니다. 채에 걸러 벌레가 없는지를 세심하게 살펴 화분 하나하나에 넣고선 흐뭇했습니다. 그리곤 넓은 화분에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시크라멘트에 장미허브를 옮겨 심었습니다. 둘이 아주 잘 어울려 보였고, 분갈이도 해야 하기에 그랬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자 초록 잎이 노랗게 말라가더니 결국 죽었습니다. 물도 햇빛도 충분했고 저의 정성도 모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분을 정리하다가 두개의 화초 뿌리가 서로 엉켜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간은 충분했으나 서로에게로 뿌리를 뻗어 숨이 막혀 말라있는 화초를 보며 서로의 생명이 고유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의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이 안전거리를 무시하면 나무는 서로 죽을 수밖에 없고, 자동차는 사고가 나고, 사람은 집착이나 애착이 생겨나 각자에게 부여된 충만한 생명력을 살아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에게 고유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또 하나의 사랑의 행위이지요.


제가 화초를 가꾸는 목적은 꽃을 보기 위함은 아닙니다. 꽃을 포함한 화초 자체의 생명력이 저에게 사람에 대한 섬세함과 보살핌의 시선을 키워 주기에 제게는 스승과 같습니다.


까탈스러운 화초는 그 자체로 고유하고 손쉬운 화초도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화초를 가꾸는 과정이 곧 저의 내면을 가꾸어 가는 여정이지요. 이러한 측면에서 화초에 머무는 저의 시선과 손길, 생각과 기도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생명의 고귀함을 느낍니다.


화초는 자신의 가장 귀한 생명력을 생명을 걸고 저에게 내어 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줄 줄 알기에 화초는 부자입니다. 이 세상에 참된 부유함은 재물을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향해 내어 주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화초와 같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가장 귀한 것 까지도 기쁘게 내어주며 사는 부유한 이들이 많습니다.


제 삶에도 내어줌으로 참된 부유함을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나 계시기에 오늘도 그분의 여정에 저 또한 동참하려 합니다.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