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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요한나 수녀] 모두가 함께가자

종|교|칼|럼|삶


김수영 요한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모두가 함께가자

  

저는 고향이 부산이지만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중학교 1, 2학년은 울산에 있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전국체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나가서 매스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1학년이면 1학년 전 학생 집단이 운동장에서 어떤 체조를 하는 것이었는데 체조 그 자체보다도 집단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는 운동이었습니다. 집단이 갖는 표현력을 목적으로 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일체가 되기도 하고 그룹으로 나뉘기도 하면서 경쾌한 동작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국민체육대회의 식전(式典)의 일부로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지요. 한 학년 15개 반에서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하다 보니 어마어마한 집단 체조였습니다. 현재는 올림픽 등의 큰 스포츠 제전에서는 매스게임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되었고 사회주의 국가의 매스게임은 특히 유명한데 지금 우리가 북한이 카드 섹션이나 집단 매스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서 정말 놀라는 것이 그 많은 사람들의 일사 불란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학생들이 매스 게임을 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동작을 못 외거나 아름답게 표현을 못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영 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줄만 해도 벌써 몇 십명이 서 있는지라  중심에 선 사람이 한 번이라도 빨리 움직이거나 줄 먼 쪽에 선 사람이 한눈을 팔고 조금만 늦게 움직여도 줄이 삐뚤빼뚤 보기 싫어집니다. 그러면 행여나 틀릴까 숨죽이며 구경하던 사람들과 가르치시던 선생님들의 눈살이 찌푸려지죠. 매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긴장감 있게 서로를 살펴서 차등을 두고 움직여야 합니다.


중심에 선 사람은 성큼 한 발을 내딛으면 줄 끝 쪽에서는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중심에 선 사람은 줄 끝쪽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여 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줄 끝쪽에 선 사람들은 빨리빨리 움직여 줘야 하구요. 그게 어린 나이에는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예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지에서 본 글인데 어딘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떤 오지를 다니던 탐험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안내하던 원주민들이 갑자기 길을 가다가 앉아서 움직이지를 않는 겁니다. 왜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니까 바쁘게 걸어오느라 따라오지 못한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의 바쁜 마음에는 게으름 같았지만 나중에는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몇 년 전, 홍콩에 선교 가 계시는 우리 수도회 수녀님을 따라 그쪽 신부님, 천주교 신자들이 한국을 방문 온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학교에서 파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왜 혼자 다니느냐고, 저렇게 혼자 다녀도 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이 더 이상했었죠. 알고 보니 홍콩에서는 납치 위험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는 다니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홍콩과 다른 한국의 천주교회 상황과 이런 사회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라고 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홍콩은 이제 너무 앞서 가버려 뒤돌아보기를, 옆 사람을 쳐다보기를 잊은 나라인 것입니다. 서로에게서 이익만 취하는 나라가 되어 버린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디에 쓰는지도 따라 잡을 수 없는 선진 기계들의 향연이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물건들, 일들, 사건들 속에서 그 중의 하나가 되기에 급급해 하는 느낌입니다.


우리 서로가 옆을 보면서 조금만 천천히 간다면, 결국에는 그 일이 우리를 위한, 우리의 후손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입니다. 나만을 위한 길이 나를 위한 길이 아니고 오히려 해치는 길일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좀 늦게 가더라도 이웃을 위하는 길은 언제나 나를 위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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