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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플로렌스 수녀] 고추장과 토마토 케첩의 만남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고추장과 토마토 케첩의 만남

  

이곳에 처음으로 도착한 다음 해에 페로에 제도의 말을 배우기 위해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 중의 하나인 유타마스트는 태국인으로 이곳의 남자를 만나 동거하면서 4살짜리 아들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살아 가끔 방문하는데 지난 해부터 이 아들이 제가 일하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여 더 자주 만나는 편이지요. 그리고 이 친구는 잘 퍼주는 사람입니다.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는다’는 삶의 환경에서 자라난 저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고 정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가끔 듣는 우리네 수녀님들의 반응은 제가 수녀원에서 못 먹고 못 입고 사는 걸로 아나보다고 놀리십니다.


그런 어느날 방문한 제게 그녀는 마른 생선 몇 마리가 담긴 봉지를 내밀며 아는 태국인이 하는 가게에서 샀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가져 가라길래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대상으로 요리실험을 해보려는 심산이 있었지만 모두를 위한 요리라면 몰라도 혼자를 위해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생선 봉지가 오래동안 냉동실을 차지하고 있어 음식 살림을 담당하는 수녀님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성탄전야의 전통요리로 ‘Rastan fisk’(직역: 썩은 생선?)가 있는데 막 잡은 생선을 처마 밑에 3주 정도 매 달아 말려지면 이를 삶아서 양의 내장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 진 톡 쏘는 소스와 함께 먹습니다.


오만 가지의 방법으로 생선을 요리하는 한국 태생으로 저는 이를 아주 맛있게 먹는데 온 집안을 진동하는 냄새로 인해 다른 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은 데다가 제가 받은 생선이 바로 이 생선과 비슷한 줄 알고 저까지 은근히 걱정하게 만들더군요. 토요일 저녁이면 허물없이 문을 두드리며 방문하곤 하는 가까이 사는 젊은 주부의 집에 갔다가 제가 자유로이 수녀원에서 사용 못하고 있는 마른 생선이 있는데 이를 원하는 지 물었더니 다음에 올 때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그 다음 토요일 저녁에 즉시 그 봉지를 꺼내들고 그 집의 문을 두드렸는데 불빛 없는 캄캄한 집에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냉동실에  집어 넣으며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인터넷이 떠올랐습니다. ‘마른 생선 요리’를 써서 쳤더니 첫 순서로 떠오른 요리법이 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마른 생선을 강정으로 변모시키는 양념장에 바로 고추장과 토마토 케첩, 다진 마늘과 파, 물엿과 설탕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별로 케첩과는 가까운 친구가 아니지만 다행이 얼마 전에 한국에서 받은 고추장과 섞어지는 맛이 어떤 맛일 지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저의 식사 당번인 토요일에 모두를 위해서는 간단한 메뉴를 하기로 하고 이 마른 생선요리를 실험삼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파 누워 있었을 때 받아 먹었던 고기 요리가 담겨 있었던 그릇에 이 생선요리를 조금이라도 담아서 감사의 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 더 신이 났습니다. 실은 1월의 마지막 주간에 3일동안 열이 올라 일을 못나가고 방 안에만 누워 있었을 때 저에게 준답시고 유치원에 아들을 찾으러 가는 길에 쌀밥이 담긴 봉지와 고기 요리가 담긴 그릇 그리고 파인애플 하나를 들고 걷는 유타마스트를 저의 책임자 수녀님이 길에서 다행히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제가 누워있음을 몰랐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제게는 엄청난 감동의 선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음식을 방으로 배달해 주는 수녀님이 제가 저녁 식사로 무엇을 얼마만큼 원하는 지 물으면서 밥이 아니어서 미안해하며 저의 방을 나가신 지  얼마 안 되어 이 밥봉지를 들고 다시 들어와서 저는 무척이나 놀랬습니다. 저는 이렇게 일상의 삶 안에서 거져 받는 뜻밖의 선물들이 많아 ‘하느님께서 마련하신다’라는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자주 부르게 됩니다. 


금요일 저녁에 이 마른 생선을 작은 크기로 잘라 물에 다섯 시간 정도 불린 뒤 체에  받쳐 밤새도록 물빠지게 놓아 두었습니다. 다음날 생선위에 밀가루를 뿌려서 팬에 기름를 두르고 튀긴 뒤 양념장에 섞어 다시 팬위에서 잘 버무렸지요. 이 맛을 본 순간 휘둥그래진 눈으로 제 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 “원 세상에 바로 이 맛이었어? 그 언젠가 오래 전에 한국에서 맛 보았던 바로 그 맛이야. 달콤하면서도 조금은 매콤한 이 맛.”  저는 이 맛이 고추장과 케첩의 만남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살 때는 별로 요리를 해보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두려워했던 분야 였거든요. 실은 너무 매울까봐 고추장은 분량보다 훨씬 적게, 케첩과 꿀(물엿 대신, 그리고 설탕 무사용)은 훨씬 더 많이 넣어서 너무 달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약간의 매운 맛을 끝에 가서야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 모든 양념의 맛을 좋아하는 마리사 수녀님과 신부님 그리고 저는 식사 시간에 이를 덤으로 맛을 볼 수 있었고 양념에 섞기 전에 튀긴 생선만을 맛 보았던 루이사 수녀님도 생각과는 달리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식사 후에 유타마스트에게 달려가서  이 생선 요리를  내밀었더니 마른 생선을 얼른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하여튼 그녀도 맛있는 사탕처럼 즉석에서 잘 집어 먹었습니다. 실은 저도 만드는 동안 자꾸 손이 가서 다른 이에게도 맛 보이기 위해 자제를 해야할 정도였거든요. 요리를 끝내면서 내리는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하! 바로 이 신기한 맛을 내게 보여주시려고 하느님은 내가 손수 이 마른 생선을 요리하게 하셨구나. 하마터면 굴러 들어오는 복을 내 발로 차버리려 했네?  그래,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맞이하기보다 삶의 주인이신 분께서 내게 보내시는 선물로 맞이하여 요리를 잘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달콤, 매콤한 맛으로 변하는 것이였다. 그렇다, 다음 수다 떨이의 제목은 바로 이거다 : 고추장과 토마토 케첩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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