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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정 사비나 수녀] 흔들어라… 부드러워진다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흔들어라… 부드러워진다

  

유명한 소주 광고의 문구이죠. 한동안 지나가는 버스 곳곳에 이 문구가 붙어 있어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나 봅니다. 지난 일요일 저녁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갑자기 마음에 떠올랐으니까요.


그날 오후 일 년 전쯤 멀리로 이사간 이웃집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세 살과 두 살이던 세창이와 홍은이가 얼마나 많이 컸던지요. 세창이는 손가락 네 개를 펴며 자기는 네 살이고, 동생 홍은이는 세 살이라고 아주 또록또록하게 말합니다.


엄마 아빠와 이 근처에 왔는데, 제일 먼저 ‘수녀님 보고싶다’며 전화를 하라고 졸랐다더군요. 자벌레처럼 배로 기어 수녀원 조그만 거실 탁자 종단(?)에 성공할 때부터 엉금엉금 걸음마를 떼는 순간, 아빠 이름을 물어도 엄마 이름을 물어도 모두 ‘끙끙끙’ 박자만 맞추어 소리를 내는데도 유독 엄마만 다 알아듣고 저희에게 통역(!)을 해주던 때까지 지켜보던 세창이기에 그렇게 자라난 것이 눈이 부셨습니다.


너무 어릴 때 헤어져서 이렇게 예뻐해주던 옆집 ‘누나들을’­작별 카드에 이렇게 쓰며 저희들끼리 키득키득 웃었습니다만­기억이나 해줄까 더더욱 섭섭했던 기억이 납니다만 1년만에 만난 세창이는 아가방에서 익힌 춤과 노래솜씨까지 덧붙여 여지없이 ‘누나’들의 애간장을 녹여놓았습니다.


세창이와 “흔들어라… 더 부드러워진다”는 문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좀 궁금하시지요? 네 식구가 떠난 다음 마음이 아주 따뜻했습니다.


천진한 아이들과 사려깊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엄마,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 아빠, 그들이 무엇을 남기고 갔길래 이 따뜻함이 제게, 그리고 우리 식구들에게 계속 남아있는 것일까요? 그들의 무엇인가가 우리를 흔들어서 우리 마음을 더 부드럽게 만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다 “그들의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워 버리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리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돌로 된 마음을 흔들리지 않고 아파하지도 않는 무감각한 마음의 표상이라 이해한다면 살로 된 마음은 그와 반대겠지요. 쉽게 감동되고, 흔들리며 그래서 아픔도 더 잘 느끼겠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마음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살로 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느님과 “그들은 나의 것”, “나는 그들의 것”이 되는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로를 기억하고, 그러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따뜻해지며, 상대가 잘 있는지, 혹은 행복한지 궁금해지기도 하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확실히, 행복을 위해서는 돌보다는 살로 된 마음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고, 때로는 지치고 벅차기도 한 일상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떻게 이 살과 같은 마음을 유지하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 때, ‘흔들어라… 더 부드러워진다’는 경구를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요? 흔들어라… 어린아이의 순수함,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부부의 눈길,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 봄날의 아지랑이, 물오르는 나뭇가지, 터지기 직전의 꽃망울, 그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흔들어라’, 마음에 주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14미터 지진 해일과도, 스스로 만들어놓은 원자력과도 힘겹게 싸워야 하는 이 가련한 세대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그런 폐허 속에서 찾아낸 손자의 돌사진을 들고 웃을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에 있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마음껏 흔들어봅시다. 호시탐탐 흔들릴 기회를 찾으며 더더욱 부드러워집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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