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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플로랜스 수녀] 나의 이웃, 나의 친구 ‘윌보르그’

종|교|칼|럼|삶


나의 이웃, 나의 친구 ‘윌보르그’

 

이연희 플로랜스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수녀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페로 제도의 전통적인 집(지하창고 , 1층, 다락방으로 지어진 아주 작고 아담한 집)이 넓은 정원의 한 곁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의 수녀원이 30여년 전에 지금의 자리에 지어질 무렵, 윌보르그는 바다를 향한 전경이 가로 막힌다며 무척이나 못마땅해 하였고 우리들뿐 아니라 외국인들에 대한 그녀의 눈길이 별로 예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도 6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율리아 수녀님은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제가 8년 전 이곳에 도착한 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율리아 수녀님이 돌아가신 후에 혼자 사시는 그녀의 집의 문을 단순하게 그냥 두드리며 처음으로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한 딸을 하나 가진 남편을 늦은 나이에 만나 결혼하여 당신의 자식은 없고 남편도 세상을 떠난 지 오래, 그야말로 홀로 사신 지 오래 됩니다. 그녀는 이 집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까지도 살면서 올해 93세가 되시니 이 집의 나이도 100년을 넘어간다는 말이 믿겨지고도 남지요.


남편의 딸은 스웨덴에 살고 있어 가끔 윌보르그를 방문하고 먼 친척 아주머니 ‘마리운’이 가끔 자주 방문하면서 시장을 함께 보아주고 여러모로  윌보르그를 도와줍니다. 저는 그저 초 저녁시간에 틈이 나는대로  초인종 없는 그녀의 현관 문을 두드리는데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수백 번을 두드려야 문이 열립니다. 저의 끈기를 시험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귀가 먹어 잘 듣지 못하고, 현관  바로 옆의 부엌엔 라디오가 혼자서 엄청 소란스레 떠들고 있으며  조금 더 안쪽에 있는 거실에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텔레비젼 역시 요란스러우니 뒤늦게라도 저의 두드림을 들으시고 나오시는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때로는 무슨일이 생기진 않았는지 밖에서 수십 번을 두드리는 동안 겁을 먹기도 하는 게 사실이구요. 이러기를 몇 년…우린 말이 별로 필요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텔레비전 앞에 잠시 같이 앉아 있는 친구가  된 셈이지요.  그래서 부활이나 성탄이 다가오면 직접 카드를 만들어 현관문에 나 있는 우편물을 위한 구멍으로 던져 넣었고, 맛있는 후식이 생기면 저는 그녀의 몫을 챙겨 부리나케 그녀의 집으로 달리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4월말 부활 주일 바로 전 날인 토요일 오전에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수녀님이 윌보르그가 집에서 목요일 자정에 계단에서 넘어졌고 그 다음 날 정오에 도착한 가사 도우미에 의해 발견되어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으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전해주었습니다. 페로 제도의 옛 가옥의 다락으로 향하는 계단은 엄청 좁고 가파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다락방에 침실을 가지고 있으니 90세를 넘긴 연세에 언젠가는 일어나고야 말 일이 일어난 거지요. 가사 도우미를 신청한 것도 겨우 몇 달 전 입니다.  나중에 들은 말에 의하면 자정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내려오는 계단의 중간쯤에서 굴으셔서 머리가 바로 출입구의 철 난방기에 부딪혀 피가 났는데 골반뼈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어 엎드려져 있으면서도 페로에 제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인 예수님의 죽음을 기리는 성 금요일의 반국기를 달지 못해 안타까워 하셨다나요?


토요일 오후에 병원으로 그녀를 방문하니 갈아입을 겉옷이 하나도 없고 실내화가 없다는 간호원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곳에선 병원에 입원하면 병원이 제공하는 속옷을 사용하고 그 위에 걸치는 일반 겉옷은 가족이 챙깁니다. 공교롭게도 윌보르그의 집안을 자주 드나드는 마리운이 덴마크에 가고 없는 사이에 이 일이 터졌으니 제가 할머니에게서 집 열쇠를 얻어 옷 한 벌을 챙겼고 간호원이 원하는 샌달을 찾아 헤메다가 지하에서 겨우 한 켤레를 발견했는데 신기고 벗기기가 편한 찍찍이가 없어 수녀원의 제일 키가 크신 수녀님께 사용하지는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간수해 놓은 찍찍이 샌달을 빌려 갔더니 안성맞춤처럼 잘 맞아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할머니는 생각보다 안색이 좋아보이셨고 당신 집 부엌의 책상위에 저를 위한 부활 선물(초콜릿)이 있다며 가져가라셨습니다. 다행이도 제가 던져넣은 부활카드를 읽어보셨고 선물까지 준비하신 후에 이 일이 터진 듯 했습니다. 다음 주간에는 제가 유치원의 일이 일찍 끝나 매일 그녀를 방문해서 사용한 겉옷을 수녀원에서 세탁하여 다시 갖다 놓곤 했는데 가끔 할머니는 무척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게 두렵다며 저의 손을 놓치 않으셨고 집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온 몸을 떨게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안쓰러웠습니다.


뒤에서 그녀를 힘껏 안아주니 당신을 위해 예수님께 기도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러겠다고 했죠. 그 다음 날 다시 가니 편한한 모습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했는지 확인질문까지 하시는 걸 보고 사실 놀랬습니다. 저녁기도에 큰 소리로 했다고 하니까 지붕이 날아갈 정도였냐고 하시길래 제가 크게 웃으니 할머니도 함께 한참 큰 소리로 웃으셨습니다. 가끔 이렇게 할머니는 유머가 있으십니다.


윌보르그 할머니를 방문하면서 여러 다른 90세가 넘으신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모두가 골반뼈가 부러져 수술하신 분들이죠. 새롭게 안 사실은, 이분들이 넘어져서 뼈가 부러진게 아니고 오래된 골반뼈가 갑자스레 부러져서 사람이 넘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딸이 스웨덴에서 오면 병원측과 대화를 잘하여 윌보르그 할머니가 편안하게 걱정없이 지내실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끔 그리고 매일, 나의 이웃들과 친구들의 평안을 위한 기도가 자연스레 우러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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