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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정 사비나 수녀] 생명이라는 것은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생명이라는 것은

  

저희 집에 좁쌀보다 조금 큰 열대어 몇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저희 수녀님이 방문한 어떤 수녀원에서 키우는 열대어들이 너무 예뻐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치어 몇 마리 나누어주시더라고요. 작은 어항에 넣어 햇볕 잘 드는 거실 한 켠에 두어 하루가 다르게 제법 제 꼴을 갖추어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정말 조그맣고 연약해서 물 갈아줄 때 급한 마음에 그물질만 거칠게 해도 죽는 놈이 생깁니다. 금방까지 살아 생생하게 헤엄쳐 다니던 것들이 그렇게 죽거나 아니, 힘만 없어져도 마음이 언짢아집니다.


작고 약한 것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물이 차거나 더럽다, 밥이 모자르다, 혹은 빛을 좋아한다…. 그 말이 들리지 않아도, 그 몸짓이 크지 않아도 어쨌든 말을 합니다. 아니, 약할수록 더 강하게 외칩니다. 우리의 마음 한켠을 내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렇게 마음자리를 내어주면 저절로 더 자주, 더 시간을 들여 살피게 되고, 살피게 되면 뭐가 필요한지 알아차리게 되고, 알아차리면 적절하게 보살필 수 있게 됩니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귀찮고, 한편으로는 다른 어떤 무생물이 줄 수 없는 기쁨도 줍니다.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고 어떤 것을 가꾸어갈 때 마음 한편에서 은근히, 그러나 확실하게 샘솟아 오르는 기쁨 말입니다. 그래서 어항을 씻어주고, 물을 갈아주고, 먹이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주고…, 이 과정이 귀찮은 마음이 들 때마다 아, 이게 생명이 있어 나에게 시간과 관심과 책임감을 요구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곤 합니다. 어린왕자가 이야기한, “길들이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겠지요.


잠깐 영국에 체류할 때,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영국사람들이 참 의연하더군요. 그날 밤 TV에 나온 할아버지 한 분은 “우린 이런데 단련되어 있잖아요?” 하며, 2차 세계대전 때의 경험에 비하면 이 정도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방송에서 더 크게 놀라고 떠든 것은 이 테러사건의 범인이 아랍계이긴 하지만 세 살 때 영국에 건너와 영국식으로, 영국 체제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준수한 청년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였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는 그 사람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엄청난 분노를 전제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방송에서 그 범인의 성장과정을 자세히 조명하면서, 혹시 그 사람이 차별과 편견의 희생양이었던 것은 아닌지, 어떻게 하면 그 사회가 이러한 사람을 다시 만들지 않을 수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근본적인 교육제도부터 되짚어보는 것을 무척이나 감탄도 하고, 부러워도 했었습니다. 한편으로, 사람이 얼마나 민감한지, 어떠한 배려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지, 그렇지 못할 경우 또 얼마나 크고 끔찍한 결과가 돌아오는지도 절절히 느꼈습니다.


열대어 이야기에서 테러리스트 이야기라니, 너무 뛰었지요? 저로서는 참으로 연약하는 면에서, 주위의 환경과 보살핌에 민감하다는 면에서 둘이 연결됩니다. 둘 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냥 생존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생기차고 아름답고 제 생긴 모습대로 나날이, 눈부시게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마음 한 켠에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자리를 내어주고, 감탄하는 눈으로 깊게 바라보면서 말로 하지 않는 몸짓말을 읽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길들여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바로, 생명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열대어나 사람이나, 약하면 약할수록 더 큰 소리로 이러한 관심과 배려와 존중을 요구한다는 것도 같습니다.


아! 다른 것 하나가 있군요. 열대어는 스스로 죽어가지만, 사람은…, 자신과 함께 이웃도 함께 파멸시킵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 새터민 아이들 등,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단순히 남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유입니다. 생명은 그야말로 살아있어, 나의 시간과 관심과 책임감을 요구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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