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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승려가 절집에 남는다

못생긴 승려가 절집에 남는다

  

정운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선물을 받으면,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물건 주위에 놓인 가벼운 종이들이 있다. 나는 이 종이들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택배나 소포를 보낼 때, 물건 틈새에 끼워 넣는다. 책상 옆 쓰레기통에 담긴 휴지를 재활용할 때도 있다.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이용하거나 쓰일 때마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음을 새삼 상기한다. 


속담에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흉터가 없고 쭉쭉 뻗은 잘 생긴 나무라면 목수들이 일찍 베어간다. 베어진 나무는 장롱으로도 쓰이고, 사찰의 기둥으로도 쓰이며, 가정집의 문짝으로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울창한 숲속에서 산을 지키는 나무들은 대개가 못 생긴 나무들이다. 어떤 나무는 심하게 굴곡지어 있고, 어떤 나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휘어져 있고, 어떤 나무는 홀로서기 힘들어 다른 나무들과 서로 의지하며 커가기도 한다. 곧 잘 생긴 나무는 잘 생긴 대로 이름 값을 하는 것이요, 못 생긴 나무는 못 생긴 대로 숲속을 지키어 생태계를 유지해준다. 


옛날 시골에서는 자식들을 다 공부시키지 못할 만큼 가난한 농부가 많았다. 아들이 둘이었다면 공부 잘하는 아들은 서울로 유학을 보냈고, 조금 공부가 부족한 아들은 곁에 두어 농사 일을 거들게 했다. 공부 잘한 사람은 그 잘한 대로 서울 사람이 되었고, 공부가 부족했던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시골 농사꾼이 되었다. 사람들도 그 자리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훌륭한 목수는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결코 버리지 않는다. 작은 것은 작은 대로 쓰일 데가 있고, 큰 것은 큰대로 쓰이며, 굽은 것은 굽은 대로 다 쓰일 데가 있는 법이다. 간장은 간장 종지기에 담아야 하고, 김치는 김치보시기에 놓아야 제격이다. 차를 즐겨 마시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찻잔을 갖고 있는데, 찻잔도 마찬가지이다. 중국 보이차를 마실 때는 보이차에 맞는 찻잔이 있고, 녹차를 마실 때는 녹차에 맞는 찻잔이 따로 있다. 찻잔이 크건 작건, 넓든 좁든 어느 찻잔이나 그 역할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품이나 인성에 있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 사람만이 간직한 고유한 인격이 있는 법이다.


고등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법조인이나 의사, 교사라고 한다. 법조인이나 의사라고 해서 좋은 인격에 훌륭한 사람이고, 거리를 청소하는 아저씨라고 해서 악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인생을 더 잘 살았고, 어느 누가 못 살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어떤 직업이 성공한 직업이고, 어떤 직업이 실패한 직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그 사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누구나 자신의 길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자신만의 향기를 품으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다양화된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요, 살맛나는 인생인 것이다. 관건은 우리가 각각의 인품을 볼 줄 알고(隨人觀美), 나보다 상대가 못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수용할 때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서로를 이해해주자! 그리고 겸손해지자!

  


정 운 스님 프로필
1982년 명우스님을 은사로 서울 성심사에 출가하였다. 운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년간 미얀마 판디타라마 명상센터와 쉐우민 명상센터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종단의 교육과 연구를 전담하는 교수아사리의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붓다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붓다의 가르침』『맨발의 붓다』,『환희-중국사찰기행 1)』『떠남-중국사찰기행 2』,『구법-선의 원류를 찾아서』, 『허운-중국 근현대불교의 선지식』, 『경전숲길(한권으로 읽는 경전) 등이 있다.  e-mail:
saribu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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