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내 인생에 첫 번째 치과 선생님들

내 인생에 첫 번째 치과 선생님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혹은 수도원에서 함께 살아온 형제들에게 듣는 나의 외모에 관한 여러 가지 표현 중 ‘눈이 예쁘다(!)’는 말과 함께 웃을 때 ‘치아가 가지런해서, 멋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릴 적 우리 집이 잘 살아서, 치아 뽑을 때에 치과에서 전부 뽑았느냐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나의 모든 치아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위로 세 분의 친누님들이 온 힘을 합하여 치아를 정성껏 뽑아 준 덕분입니다. 어쩌면 위로 누님 세 분이 내 인생에 처음 만난 치과 선생님인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대부분의 앞니 유치(乳齒)들이 흔들리면 세 분의 누님 중 한 분에게 말하면, 뭐 간단하게 뽑아버립니다. 실을 흔들리는 치아에 묶자마자, 나의 이마를 툭 치면 어느새 치아는 누님의 손에 들려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금니를 뽑을 때에는 문제가 좀 됩니다. 우선 어금니가 아플 때면 치통을 동반하고, 잇몸에서 피도 납니다. 그렇게 나의 아래, 위 어금니를 뺄 때가 되면 누님께 부탁드립니다. ‘누나, 이빨 뽑아 주세요!’


그러면 우선 세 분의 누님이 무슨 작전 회의를 한 후 각자의 역할을 정합니다. 우선 한 누님은 나의 입 안을 두루 살피면서 어금니에 두 겹으로 비벼 꼬은 무명실을 묶습니다. 그럼 또 한 누님은 그 실을 단단히 잡고 있고, 나머지 한 누님은 나의 시선을 부지런히 분산시킵니다. 그러다 한 분이 내 목과 턱을 꼭 붙잡고 있으면 다른 누님이 힘차게 실을 당깁니다. ‘툭 …’ 그런데 어금니가 한 번 만에 뽑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때로는 두 번 혹은 세 번 연거푸 잡아당기곤 합니다. 그래도 영, 안 뽑히는 날이면, 한 마디 툭 하고 던집니다. ‘니 어금니 아직 안 썩었데이. 좀만 더 기다리라.’ 


아무튼 찔끔 흘리는 눈물과 함께 그런 고통의 시간이 끝나면, 그 어금니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 남의 집 지붕 위로 ‘휙 ~ ’ 던지면서 소리칩니다. ‘까치야 너는 헌 이빨 가지고, 나에게는 새로운 이를 다오.’ 어쩌면 어금니 뽑을 때의 긴장과 아픔을 다 날려 보내는 어린이들이만의 성장 의식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렇게 세 누님들의 사랑과 정성에 힘입어 나는 가지런한 치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체 중에 어린 시절에 쓰던 것을 뽑아야 어른의 것으로 다시 생기는 것 중에 치아가 그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누님들의 정성에 힘입어 유치를 잘 뽑아, 지금의 고른 치아를 가진 것은 큰 행운입니다. 하지만 요즘 내 생활을 보면, 아직도 뽑아내지 못한 유치가 있는 듯, 유아기적인 사고나 생각으로 생고집을 부리거나, 감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삐치거나, 무슨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생떼를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옛날 나의 첫 번째 치과 선생님인 누님들처럼, 누군가 나의 유아기적 흔적인 생고집, 삐침, 생떼를 뽑아 줄 사람이 없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어린 날에야 나의 유치는 누님들이 뽑아 주었지만, 성인이 된 나의 유아기적인 생각이나 사고, 감정은 결국 자신 스스로가 뽑아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린 날 유치를 뽑을 때는 무섭거나 아프게만 느껴졌지 막상은 그런 대로 잘 뽑힌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유치한 것들, 그것을 사실 직면하기가 자존심 상해서 생고집, 삐침, 생떼 … 등의 유아기적인 것들은 관대함이나 여유, 그리고 배려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뭐 스스로 뽑혀나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직면하기가 어렵지!  


 오늘 따라 거울을 보면 한 번 웃어 봅니다. 그리고 누님들이 잘 뽑아준 가지런한 치아를 바라보면서, 누님들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서 생고집, 삐침, 생떼 … 등도 누님들 마음을 닮아 잘 뽑아 버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따라, 나의 웃는 얼굴 속에 누님들의 얼굴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강 석 진 신부 프로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소속 신부
·현재 순교 영성 연구소 소장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