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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뿌리

 

변경수 목사
동녘교회


어린왕자가 사막에 볼품없이 피어있는 꽃에게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꽃은 “몇 해 전에 봤지만 어디로 갔는지 몰라. 그들은 바람결에 불려 다니거든. 뿌리가 없어서 몹시 힘들게들 살고 있어”라고 대답합니다.


꽃이나 나무들은 평생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식물’이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꽃은 거꾸로 뿌리없이 떠도는 ‘인간’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꽃의 시각에서 본 인간의 모습이 참으로 이채롭습니다.


나무가 빽빽이 심겨진 길을 걷다가 무심코 땅을 쳐다 보았습니다. 불현 듯 ‘저 높이까지 자라려면 뿌리도 저만큼 자라야겠지?’하는 당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뿌리는 깊어야 할뿐 아니라 깊이 들어갈만큼 굵어야 합니다. 뿌리는 나무의 키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크게 자라 있어야 자기를 밀어 올릴 수 있음을… 뿌리가 있기에 나무가 있음을… 보이지 않지만 뿌리의 성장이 있기에 나무의 성장이 있는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김용옥 교수는 EBS ‘중용’ 강의에서 ‘대자연만큼 성실한 것은 없다. 자연의 성실함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무 한그루만 잘 관찰해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때를 맞춰, 때를 놓치지 않고 ‘성실하게’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잎을 떨구고 꽃눈을 만들어 봄을 예비하는 나무의 ‘성실함’은 곧 뿌리의 건강함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위대한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늘을 나는 학도 제 철을 알고, 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도 저마다 돌아올 때를 지키는데, 내 백성은 주의 법규를 알지 못한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하늘이 정한 이치에 따라 사는데 사람만은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입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지만 사람은 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뿌리없는 ‘사람’이라 가여워했던 어린왕자 속, 꽃의 염려가 가슴에 와닿는 것은 왜 일까요? 스티븐 잡스의 혁명으로 우리는 ‘똑똑해(smart)진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람을 성숙시켰다고 인정하기는 힘듭니다. ‘스마트’한 시대의 사람들은 뿌리처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겸손한 삶이 아니라 위로 위로 올라가는 부자의 욕망을 좇아 외형적인 것에 더 치중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뿌리없는 나무 없듯 뿌리없는 인생이 없는데, 뿌리를 건강하게 하는 일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형을 키우고, 꾸미느라 온 정성을 다 바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왔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함이 뿌리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 힘겹고 어려울수록 근원적인 물음을 물어야 합니다. 뿌리는 나무의 성장을 가져오지만 또한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주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날개라는 자유도 필요하지만 뿌리라는 근본이 더 필요합니다. 뿌리의 결과가 자유이며, 뿌리없는 자유는 욕망의 꾀임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물이 바다로 모이는 이유는 바다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의 가치를 뿌리로 삼고 산다면 길을 잃었다가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갖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나침반이 한 방향만 가리키는데도 나머지 방향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듯이 우리 인생의 뿌리를 든든히 하는 하방(下方)의 삶을 지향하며 산다면 우리는 천상병 시인의 고백처럼 인생을 ‘소풍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변 경 수 목사 프로필
·동녘교회 목사
·동녘지역아동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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