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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버려도 전부를 즐길 수 있는데

하나만 버려도 전부를 즐길 수 있는데


예전에 우리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대월 아카데미 문화센터’ 사진반에서 1박 2일, ‘한국의 성지 찾아서-경주 지역 이라는 테마로 사진 출사를 나가는데, 그 날 문화센터 원장이면서, 전문 사진작가인 수사님이 내게 운전을 좀 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문득 1박 2일로 경주 지역 성지 순례를 간다는 말에 ‘아, 좋은 기회다’ 싶어, 기꺼이 운전 봉사를 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일 날 새벽, 조금은 들뜬 마음에 어느 수녀원 미사를 봉헌한 뒤, 후다닥 수도원으로 돌아와, 1박 2일에 사용할 가벼운 짐을 챙긴 후 출발 장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약속 장소에서 모여 있는 수강생 분들을 태우고, 목적지 경주로 출발을 했습니다. 수강생 분들은 날씨는 좀 춥지만, 사진 찍기는 너무 좋은 날이라며, 무척이나 좋아하였습니다.


모범 운전자로 변신한 나는 차 시동과 함께 열심히 달렸으며, 1시간 즈음 경부 고속도로에 진입하였고, 우리 차는 12인승 차량이라 버스 전용 차선을 달릴 수 있었기에, 고속도로 초입부터 막혀 엉금 기어가는 승용차들을 보면서, 방긋 방긋 웃으며 신나게 달렸습니다. 가슴이 확 뚫려 시원한 마음, 오늘은 왠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마음에… 그리고 사진작가 수사님은 차안에서도 수강생들과 사진에 대해서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오로지 안전 운전에만 신경을 쓰면서 말없이, 그러나 신나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한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문득, ‘오늘 같은 날, 아무도 나에게 전화 한 통 없네!’ 싶어, 한 손으로 운전을 하고, 다른 손으로 내 옷의 모든 호주머니를 다 뒤져 보다가 마침내, ‘아, 아뿔싸! 그래 거기, 거기 놓고 왔구나!’ 그랬습니다. 수녀원 미사 갔다 온 후, 잠깐 서두르다가, 그냥 책상 위에 핸드폰을 덩그러니 두고 가져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싸가지고 온 짐 가방 속에는 충전기와 예비 배터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말입니다.          


 핸드폰은 시계 역할도 했기에 마음속으로, ‘그래, 이젠 시계도 없으니, 1박 2일 동안 모처럼 시간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왠지 초조한 마음에 차량에 붙은 시간을 계속 쳐다보며 운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 안에 내 모든 일정이 다 적혀 있고, 다음 주에 무슨 행사가 있기에, 그 일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라 핸드폰이 없어 아무 일도 알 수 없음이 무척 답답했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래, 핸드폰은 안 가지고 왔지만, 좋은 일이 있겠지. 이참에 내가 해야 할 일과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일을 분별하는 시간이 되어야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음, 다음 주 월요일 날, 수요일 날 무슨 일 있었는데…’ 운전 내내 머리 속에 일정들이 뱅뱅 돌았습니다.


생각은 계속 꼬리를 물었고, ‘외국에서 누군가 오기로 했는데! 어느 본당 특강 요청 전화 올 건데! 친척 분 중에 아픈 분이 있어 오늘 내일 하실 텐데 … 혹시 누군가, 나랑 통화하고 싶어서 계속 전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펼쳐졌고, 때론 구름이 산 위에 걸려 있는 장면이 연출되었으며, 아직 앙상한 산이지만 정겨운 집들이 예쁘게 펼쳐지며 무척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졌지만, 머리 속은 온통 핸드폰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자연을 자연스럽게 보지도 못하고! 약속된 성지에 도착해 순례를 하고, 밤 시간 쏟아지는 별 밤의 장관을 보면서도, 마음은 책상 위, 핸드폰에 있었습니다. 다음 날 소나무 밭과 예쁜 공원을 산책도 했지만, 마음은 핸드폰 생각에서 벗어 날 수 없었습니다.    


짧지만, 너무 긴 시간이 흐른 듯 행사가 끝나고,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았을 텐데, 나와 통화를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지 않았나!’ 그런 엉뚱한 걱정까지 하면서 왔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이런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날 안 찾았으면 어떡하지!’ 수도원에 도착하자마자, 방으로 가서 책상 위에 주인을 기다리던 핸드폰을 발견했고, 무슨 화투 패 쪼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핸드폰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왠 걸! 쑥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핸드폰엔 동창 신부, 안부 문자만 하나, 달랑!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 그 날 따라, 유난히 그 말씀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석진아, 너는 지금 가지고 있는 그 핸드폰을 버리고, 나를 좀 따라 오너라’ 좋은 삶을 만끽하고 싶고, 자연 안에서 좋은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지금 유난히 집착하고 있는 것, 그거 하나 버려도 더 행복한 세상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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