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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에 새순이…

죽은 나무에 새순이…


변경수 목사
동녘교회


아프리카에서 겨울에 한국으로 유학 온 어떤 학생이 ‘왜 이 나라 사람들은 죽은 나무를 산에 심어놨을까’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봄을 맞아 나무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나무가 부활했다’고 하더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죽은 것 같은 나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핍니다. 묵묵히 겨울을 이겨낸 나무의 환희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부활의 계절입니다.


2000년도 KBS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소개된 미국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본 장면이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요란한 장식은 하나도 없고 제단 앞에 죽은 나뭇가지 하나를 세워놓았습니다. ‘죽은 나무에 잎이 나기를 바라는 소망담긴, 섬뜻한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죽어있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기 위함이라는 고백임과 동시에 ‘생명’을 기다리며, ‘살리는 힘’이 세상에 온 것을 축하하는 것이 크리스마스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에 영감을 받아 우리 교회에서는 부활절에 ‘죽은 나무에 새순이…’라는 슬로건을 걸어 놓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잘려서 아무데나 버려진 나뭇가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귀한 땔감이었겠지만 지금은 쓰레기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나뭇가지에 누구하나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버려진 나뭇가지를 이용해 나무공예를 합니다. 곤충도 만들고 문패나 목걸이도 만들면서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뭔가를 합니다.


나뭇가지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우리 아파트에 가지치기 하고 쌓아둔 나무가 많아요”라고 해서 그때부터 나무하러 아파트에 갑니다. 경비 아저씨에게 “가지치기 한 나무를 어디에 쌓아두나요? 제가 나뭇가지가 필요해서요” 하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라고 의아한 눈빛으로 친절히 가르쳐줍니다. 아파트 단지 후미진 곳에 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그곳에서 나무꾼처럼 신나게 나무를 합니다.


나무공예를 위해 주워오지만 저는 이 모든 과정이 쓸모없이 버려진 나뭇가지에 새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시편 118:22)는 말씀이 있는데, 사람들이 버린 나뭇가지는 제게 너무 귀한 물건입니다.


 특히 유실수라 잘 베어내지 않는 모과나무를 만났을 때는 절을 하고 싶을만큼 감사한 기분입니다. 나무가 울퉁불퉁 못생겼지만 모과만큼 피부(껍질)가 맨질맨질하고 속이 단단하고 예쁜 나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워온 나뭇가지를 전기톱으로 잘라 여러 모양의 조각을 만듭니다. 자연을 닮은 자연스러운 아이가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아이들에게 나무조각을 건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나무를 만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의 감성을 느끼며 자연을 체험합니다.


조안 던컨 올리버(뉴에이지 저널 편집장)의 시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을 떠올려봅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나무를 껴안고 동물과 대화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리라./ 숫자 계산이나 맞춤법보다는/ 첫 목련의 기쁨과 나비의 이름들을/ 먼저 가르치리라./ 나는 내 아이에게/ 성경이나 불경보다는/ 자연의 책에서 더 많이 배우게 하리라./ 한 마리 자벌레의 설교에 더 귀 기울이게 하리라./ 지식에 기대기 전에/ 맨발로 흙을 딛고 서는 법을 알게 하리라./ 아, 나는 인위적인 세상에서 배운 것도 내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를 내 아이가 아닌/더 큰 자연의 아이라고 생각하리라.’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물건에도 물격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함부로 물건을 버리거나 소비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심지어 물건 하나하나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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