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꽃잎이 떨어져도 서러워 말라

꽃잎이 떨어져도 서러워 말라


정 운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꽃잎이 떨어지는 즈음이다. 절정을 이루던 상춘(賞春)의 아름다움도 꽃잎이 떨어지면서 그 영화로움을 접어야 한다. 진달래·벚꽃 등 봄에 피는 꽃들이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계속 꽃을 피워 매달려 있다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매우 추한 모습일 것이다. 그 나무는 다음 계절을 향해 한때의 영광스러웠던 자태를 내려놓아야 더 아름다운 법이다. 과연 우리 사람들은 어떨까?    


무엇이든지 때가 있기 마련이다. 꽃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 있는 기간이 딱 십일(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울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병듦과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게 되어 있다. 잠시는 부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마치 벚나무가 봄의 꽃잎을 버려야 하듯이.


수십여년 호스피스 일을 하는 분이 죽음을 앞둔 사람을 관찰한 뒤,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에게 닥칠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다가 마음에 변화를 느껴 “나는 이곳에 존재했었다”라는 것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마치 눈길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려고 발로 찍듯이 죽어가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병세가 조금 악화되거나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끼면 사진조차도 찍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누군지도 모르는 자신의 사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의미함을 느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을 초월해 인간과 인간의 사랑(정), 삶과 죽음을 초월한 마음의 진정성을 발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불교경전에 전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도에 네 사람의 아내를 거느린 장자가 있었다. 첫째 아내는 남편이 가장 사랑해 늘 데리고 다니면서 잠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목욕시켜 주고, 밥도 먹여주고, 추우면 옷 입혀 주며, 좋은 화장품을 발라주는 등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둘째 아내는 사람들과 다투면서까지 얻어온 아내로서 늘 곁에 두고 다정히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지만 첫째 아내만큼은 사랑하지 않는다.


셋째 아내는 가끔 만나서 위로도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금방 싫증을 느끼고 오래 붙어 있으면 싸우게 된다. 넷째 아내는 집안의 하녀와 다름없고, 모든 어려운 일을 도맡아하면서도 남편으로부터 사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다.


어느 날 장자가 먼 외국으로 떠나게 되어 가장 사랑하는 첫째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하자, ‘왜 내가 당신과 함께 가냐’며 냉정하게 거절한다. 둘째 아내에게 가서 ‘피나는 노력을 해서 당신을 얻었으니 함께 가자’고 하자, 둘째는 ‘당신이 억지로 나를 데려오고 싶어서 데려왔지, 내가 오고 싶어서 왔느냐’며 동행을 거절한다. 셋째 아내는 ‘당신과 그동안 쌓은 정이 있으니 동구 밖까지만 함께 해주겠다’고 한다. 결국 좋아하지도 않는 넷째 아내만을 데리고 멀리 외국으로 떠난다. 이 이야기는 비유로서 외국은 죽음의 세계, 첫째 아내는 인간의 육신, 둘째는 재산, 셋째는 가족·형제·친구 등이다. 가장 천대했던 넷째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다. 


조금 덜 늙어 보이기 위해, 좀 더 예뻐 보이기 위해, 몸짱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별의별 행동을 한다. 앞으로 고도로 의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몸이 영원히 젊을 것인가. 최근에 선거를 치르는 동안 어느 국회의원은 논문표절로 곤혹을 치렀다. 빨리 성공하고 싶은 욕망, 내 영혼을 팔아서까지 얻고자 하는 그 명예가 도대체 그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결국 그 추구하던 욕망이 부메랑이 되어 더 큰 손실을 보고 있지 않은가. 한국 최대 갑부라고 하는 어느 기업의 사장들은 자존심까지 내버리고 형제들끼리 법정 투쟁을 한다. 좀더 많은 부, 좀더 많은 통장잔고를 위해 사람들의 손가락질까지 감수하며 돈을 위해 싸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정작 그런 명예와 부, 육신이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인가? 아마도 인간은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발견했을 때는 죽음을 앞두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이를 알았을 때는 늦은 것이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가 남겨놓은 인생의 소중한 메시지로 주위 사람은 살아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젊었을 때, 살면서 자각하고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마음을 살찌우는 일, 순수한 영혼을 간직하는 일, 마음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