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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몇 년간을 책 출판으로 마음이 바빠 봄에 피는 꽃조차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올 봄은 여느 해의 봄과는 다른데, 조금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일주일전 동네 뒷산을 올랐는데, 아카시아 향기가 온 산에 머물러 있어 그 향내에 취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며칠전 보았던 아카시아와 야생화의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산에 올랐다. 그런데 아카시아 꽃들은 모두 떨어져 눈처럼 흩날려 길가에 쌓여 있었고 더 이상 아카시아 향은 없었다.


일주일 전 본 것을 오늘 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나도 어리석다. 오늘 이 시간 이 시점이 아니라면,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시시각각 변하여 더 이상 볼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니 오늘이, 이 시간, 이 시점, 현재의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차를 좋아하는 한 스님이 차를 마시며 명상하는 오두막을 짓고는 그 오두막집 이름(편액)을 짓기 위해 오래전부터 존경하는 선사를 초대했다. 그런데 마침 선사가 오는 당일 날, 급한 볼일이 있어 집을 비우게 되어 제자에게 ‘다음에 와 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선사는 편지를 받지 못했다. 


이 스님이 그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을 비운 사이에 그 선사가 다녀갔다. 선사는 스님에게 쪽지를 하나 남겼다.


“게으른 스님아, 나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스님은 선사를 찾아가 깊이 사죄를 하고, 집에 돌아와 제자들에게 이런 교훈을 남겼다.


“오늘, 오늘하고 그날을 충실히 살아갈지어다. 내일 목숨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의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법이요, 행복해야 한다. 어떤 무엇을 기대하고 행복을 바라는 것인가. 주위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현재 시점 순간 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내 스스로 찾고 발견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벽암록’에서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고 하였다. 일진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방정맞은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가끔 신도들로부터 ‘이사를 가고 싶은데 어느 방향, 어느 시기에 가면 좋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정하게 길일(吉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면 그 날이 길일이다. 이때가 가장 좋은 날이요, 시기인 것이다. 


승진하고, 대학에 합격하고, 많은 돈을 벌고, 집을 사는 등… 어떤 것을 성취했다고 하자. 그것을 누리는 기쁨이 얼마나 가겠는가. 며칠, 몇 시간만 지나면 또 새로운 욕망을 꿈꾼다. 작은 일에 행복을 발견하는 그 시점, 인생의 순간순간 과정 과정이 인생의 목적이요, 보람인 것이다.


대학 강좌에서 내 수업을 수강한 4학년 학생 과제물(가치관이나 인생관에 관해서…)에 의미 깊은 내용이 있어 내용 일부를 소개하기로 한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전문가(professional)가 되자’는 것이다. 이 말은 나의 좌우명으로, 직업적으로 전문가가 되자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하거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분야에 집중하자는 뜻이다. 마산에서 지낼 때는 마산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집중하고, 서울에서는 새로운 사람도 많이 사귀고 서울에서의 삶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했다. 한곳에 집중한다고 다른 한곳을 소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해진 현 상황과 공간에서 집중하는 의미이다. 내가 이 말을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면서 마음의 평안도 찾고 행동도 달라졌다. 공부할 때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주의를 산만하게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고, 친구들과 놀 때나 운동할 때는 공부는 모두 잊고 내가 지금 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좌우명을 마음에 새기고 지내니까 생활도 활기차고 나 자신에 대한 만족도 높아졌다.”


행복을 너무 멀리 찾지 말자. 내일이란 없는 것이다. 오늘 핀 꽃잎은 오늘 아름다운 것이지, 내일은 벌써 지고 사라져 버린다. 매일 매일, 이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이요, 그 처한 현재의 오늘, 이 자리가 인생의 최고시점이다.


정 운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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