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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단어, 경직된 삶

좋은 단어, 경직된 삶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예전에 ‘이번 한 달 착한 마음으로 살기’를 결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듯, 요즘 수도 생활하면서 부끄럽게도 사소하고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내 방식대로 우기고, 섣부른 판단을 하여 함께 사는 형제들과 가끔 갈등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달, 한 달 동안은 ‘착한 마음’이라는 단어를 머리와 가슴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달 동안은 잘 지낸 것 같았습니다. 기분 좋은 그 달, 한 달을 지내면서 내 자신이 기특하다며, 스스로를 위로, 격려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결심의 마지막 날 토요일! 그 날 오후, 급하게 교회 내 원로 학자께서 나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그 분 연구실에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중요한 선약도 있었기에 그 날은 수도원 차량을 이용해서 빨리 다녀오기로 계획을 잡고 그 분 연구실로 운전하며 갔습니다. 그 분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 도착한 뒤 차 열쇠를 주차 관리 사무소에 맡긴 다음,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인사 및 함께 차를 나눈 후, 중요한 일정을 상의 드린 다음 ‘좋은 주말 보내 십시오’, 인사드리고 나와, 주차 관리 사무소로 달려갔습니다. 그런 다음 공손히 주차 관리인에게 ‘차량 번호 0000 열쇠 좀 주시겠어요!’ 청했더니, 술이 좀 취하신 듯 한 모습의 관리인은 대뜸, ‘열쇠 거는 통이 좀 전에 땅바닥에 떨어져, 차량 열쇠들이 그냥 다 섞여 버렸으니, 직접 좀 찾아보시라’는 것입니다. 아, 그 순간… 휴우, 착한 마음!  


심호흡을 하면서, 많은 열쇠 꾸러미들을 뒤지며, 수도원 차량 열쇠를 찾아보았지만 거기에 없었습니다. 몇 분이 흘렀는데, 몇 시간이 지난 듯, 나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착한 마음, 착한 마음’. 5분, 10분… 시간은 흘렀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자, 주차 관리인에게 ‘찾아도 열쇠가 없다’는 말을 했더니, 횡설수설한 목소리로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며 오히려 나에게 따져 묻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려했으나, ‘착한 마음’, ‘착한 마음’, 무슨 염을 외우듯 침을 삼키듯 나지막히 내뱉었습니다. 다시 심호흡을 한 후, 열쇠를 좀 잘 찾아 봐 주시라 부탁드렸더니, 내 말에는 아랑곳 않고,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들 주차하고, 그들의 차량 열쇠를 건네주고 받곤 하였습니다.


그 순간, 그냥 가만히 서서, 호흡을 하며 나를 달래고만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또 몇 분이 지나자 순간 폭발해 버렸습니다. 주차 관리인에게 건물 책임자 불러오라고 소리를 질러버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주차 관리인들도 당황한 듯, 사태 파악을 한 후 자기네들끼리 이리 저리 열쇠 꾸러미를 찾더니 결국, 다른 곳 주차 상황판에 고스란히 걸려있는 수도원 차량 열쇠를 황급히 찾아 주었습니다. ‘아, 이런 일이!’ 그 분들은 ‘퇴근 시간이라 복잡하고 바빠서 그랬다’며 핑계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계속 호흡하며, ‘휴우… 휴우… 착한 마음! 착한 마음!’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돌아오는 길, 흥분만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선약마저 늦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그렇게 약속 시간 보다 훨씬 늦게 돌아왔는데, 정작 손님들은 우리 수도원 형제들과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는 눈빛이 오히려, ‘왜 이리 일찍 왔느냐!’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순간 마음속에 꽉 막힌 생각 하나가 뻥~뚫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동안 나는 단지, ‘착한 마음’이라는 단어만 머리 속에 경직된 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좀 더 상황 파악을 하면서 좀 더 조근, 조근 물어 볼 수 있는 과정을 생략한 채, 나 혼자 머리 속으로 ‘착한 마음’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던 것입니다. 내 몸은 흥분 가라앉히느라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서. 그리고 또한 약속 시간을 완벽하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가두어 버렸습니다. 세상 일 이런 일, 저런 일 다 생길 수 있는데 더욱이 내가 아니라도, 돌발 상황에서 나를 믿는 주변 사람들이 내 빈자리를 채워 줄 것이라는 생각마저 못한 채, ‘머리로는 착한 마음’이었지만 몸은 짜증을 내던 내 자신을 보면서, 결국은 나를 달달 볶았던 것입니다.


‘착한 마음’ 생각은 쉬워도, 그것을 즐기듯 마음 안에 간직하며 살아가기는 아직 어려운 모양입니다. 수도 생활 25년 이상을 살았는데도 아직까지 초보자인 나를 봅니다. 아직도 초보자… 그래도 함께 사는 동료들의 사랑과 배려로 조금씩 치유는 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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