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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과 오르막길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늦은 오후에 동네 뒷산으로 산행을 하였다.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야산치고는 꽤 큰 산이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앞에서 70대 초반의 할아버지와 5살 먹은 손자가 손을 잡고 내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먼저 손자에게 말했다.


“아까 올라갈 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안 힘들지?!” 
“네”
“힘들 때가 있으면, 힘 안들 때도 있는 법이란다.” 


평범한 말이지만 연로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인생의 진리였다. ‘삶에 있어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고, 힘들 때가 있으면 힘들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아마도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네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그렇단다.’라고 해주고 싶었을 테지만, 그 말을 알아듣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였다. 이들의 몇 마디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불교 경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 장자의 집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장자가 문을 열자, 그 여인이 말했다.


“나는 공덕천이라고 하는데, 당신 집안에 행복한 일과 재물을 가져다주며, 행운이 따르는 좋은 일만 가져다주는 사람입니다.”


장자는 너무 기뻐서 여인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바로 뒤에 검은 옷을 입은 험상궂은 여인이 따라 들어왔다. 장자가 ‘누구냐?’고 묻자, 여인이 말했다.


“나는 흑암녀라고 하는데, 저는 당신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나 불행한 일만 가져다주는 사람입니다.”


장자가 그녀를 내쫓으려고 하자, 흑암녀가 말했다.


“나는 공덕천 언니와 늘 붙어 다니는 자매로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두 사람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이야기처럼 행과 불행은 늘 함께 하기 마련이다.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생만사(人生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였다. 변방에 사는 한 할아버지가 좋은 일이 생겨도 불행한 일이 생겨도 그 어떤 경계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고사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영광과 고달픔은 누구나 겪게 되어 있다. 아무리 부귀한 집안에 태어났을지라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기복은 누구나 찾아오는 법이다. 학생으로 치면 시험을 잘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다. 사업으로 말한다면 사업이 번창할 때도 있겠지만 일이 풀리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인생에서 계속 힘든 일만 생길 것 같지만, 밝은 날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한편 그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거나 번창할지라도 우쭐해서는 안된다. 내리막 길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들뜨지 말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담하지 않고 태연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말을 새겨보자. 


“불길이 무섭게 타올라도 끄는 방법이 있고 물결이 하늘을 뒤덮어도 막는 방법이 있으니 화는 위험한 때 있는 것이 아니고, 편안할 때 있으며 복은 경사가 있을 때 있는 것이 아니라 근심할 때 있는 것이다.”


정 운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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