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참으로 별난 강아지!

참으로 별난 강아지!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나는 애완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어느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갈 경우, 그 집에 강아지나 고양이, 그리고 그 밖의 동물들이 있는 걸 보면, 남들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 예쁘네요, 귀엽네요… ’ 뭐, 이런 말들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집 식구들이 키우는 강아지나 그 밖의 동물들이 나에게 다가오면, 집 주인에게 말은 못하고,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방금 기억나는 것으로는 예전 신학교 다니던 시절, 어느 선교 수도회를 방문했을 때 일이 떠오릅니다. 그 수도회 마당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날, 그 개가 나에게 어슬렁 다가오더니, 이유 없이 나의 종아리를 물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개가 나를 물을 것을 본 거기 수녀님이 달려오더니, 나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개에게 ‘많이 놀랐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꼴을 당한 후, 더욱 애완동물과 그 동물을 애지중지 키우는 이들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던데, 그런 말을 들으면, 동물에게 ‘반려’의 마음을 가지는 그 정성을 자기 가족이나 이웃에게 ‘좀 더 마음을 쓰라’고 항변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은 나름대로 ‘반려동물’과의 추억과 함께, ‘우리 애(-반려 동물을 지칭함)가 보통 사람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직하고, 변함없는, 아니 오로지 자기 주인만 사랑하는 그 마음, 나는 잘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애완동물’이건, ‘반려동물’이건 간에, 동물은 그들 나름의 본성대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지, 나는 ‘애완, 반려 동물’들을 싫어합니다.


몇 일 전 일입니다. 추석 즈음 하며, 어느 가정에 처음으로 초대된 적이 있습니다. 그 날 따라, 없는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었고, 그 집 벨을 눌렀더니, 안에서 왠 강아지 짖는 소리가 찢어질 듯이 들렸습니다. 순간 본능적으로 내 몸이 위축되면서, ‘저 집, 강아지 키우시는구나, 아… ’ 강아지를 안고 나오는 형제님과 앞치마를 두른 자매님, 그리고 그 분의 딸, 이렇게 세 사람이 문을 열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강아지의 배설물(?)이 없나 주위를 살폈더니, 별 이상은 없었습니다.


암튼 그렇게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를 하면서, 그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고, 나는 강아지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다 식사를 차리시는데, 잠깐 그 부부가 김치를 내놓는데, ‘묵은지 김치를 낼까, 아니면 겉저리 김치를 낼까’ 하며, 아무 것도 아닌, 하지만 의견이 좀 충돌이 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 강아지가 그 부부를 향해 괴성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부는 강아지에게, ‘아냐, 아냐, 우리 싸우는 거 아냐!’하며 오히려 강아지를 달랬습니다. ‘사람의 언성 좀 높다고, 저렇게 짖는 강아지가 있나! 참 별일도 다 있지… ’


그렇게 두 부부는 ‘묵은지 김치’와 ‘겉저리 김치’를 식탁에 함께 올려놓았고, 그 날 아침에 담근 것이라며, 양념 게장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내 주셔서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집 떠난 지 오래되어, 방금 한 뜨거운 밥을 먹으면 마음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는데, 그 강아지가 나에 대한 탐색이 끝났는지, 별안간 내 품에 안겨 가만히 앉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거 좀 치워야 하는데…’ 그러자 그 부부는 별일이라며, 제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신부님, 저 녀석 때문에 우리가 오랜 동안 부부 싸움을 하지 못했어요. 아니 하면 큰일나요! 우리 집에서 언성이 높았다가는 밤새 이 방, 저 방을 돌면서 짖는데… 그래서 알았어요. 하느님께서 우리 부부가 하도 싸우니까, 싸우지 말라고 보내 준 평화의 사신이라는 걸. 이 녀석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고, 그렇게 목소리가 먼저 높아지지 않으니, 차분히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이야기에 감정 없이 귀를 기울일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뭐 지금처럼 살아요. 그렇다고 부부 싸움을 위해서 이 녀석 피해 밖에 나가기도 그렇고. 그냥 서로 언성 낮추며 살아요.”


그 말을 듣고, 그 강아지를 한참 쳐다봤습니다. 그러자 그 강아지도 나를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듯 하였습니다. 


‘어이, 강 신부. 너도 사람들 대할 때, 목소리부터 낮춰. 너의 목소리를 낮추면 낮출수록, 타인의 목소리와 말하고자 하는 그 뜻이 분명하게 잘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그 사람 마음의 진심 또한 잘 알 수 있을 거구! 살면서 목소리 좀 낮춰, 알겠지!’


별 망측한 강아지 다 보겠나 싶었지만 그 강아지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 때문에 부부 싸움을 못하는 부부나, 강아지가 목소리 낮추며 살라는 말을 듣고, 목소리 낮추며 살려고 노력하는 나나, 강아지를 친구로 두면, 그런 일도 있나 봅니다. 아, 그래서 ‘애완동물’, ‘반려동물’을 키우나 봅니다.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