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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명상

나 무 명 상


변경수 목사
동녘교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30주년 행사에 제가 만든 목공예품을 전시하고 싶다해서 팀장을 만났더니 조심스럽게 “목사님, 이거 벌목한 거 아니죠?”라고 물어봤습니다. “아니예요, 가지치기해서 버려진 나무 주워다가 만들었어요. 이 십자가는 볼라벤에 쓰러진 나무로 만들었어요”했더니 안도를 하는 듯했습니다.


지난 8월, 역대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태풍 볼라벤으로 제가 학교 다닐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휴교령이 떨어지는 등 온나라가 초긴장 상황을 맞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 간 후 길거리에는 바람에 꺾인 나무들을 치우느라 분주한 분위기였습니다. 가지치기로 버려진 나무를 주워서 공예를 하는 제게 나무더미는 늘 관심거리입니다. 특히 모과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향나무를 주우면 하늘을 향해 큰 인사를 하고 기뻐합니다.


일산 호수공원가는 도로에 단풍나무 가로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빠알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에 감탄하지만 저는 몸체에 감탄합니다. 근육질 모양으로 우람하게 뻗어 올라간 강인한 느낌의 몸체가 참으로 멋집니다. 그래서 이런 단풍나무를 구하는게 늘 바람입니다.


태풍 볼라벤에 의해 허벅지 굵기만한 단풍나무 가지가 꺾여있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평소 가지고 다니는 톱으로 가지를 손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 사실입니다.


‘그 강한 태풍에도 나뭇잎은 안떨어지는데, 이렇게 굵은 가지가 왜 부러졌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부러진 부분에 벌레가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약해진 부분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떨어진 나뭇가지는 대부분 죽은 가지들이었습니다. 나무는 태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제 몸에 필요없는 것들을 떨어뜨리고 몸치장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반면 살아있는 여린 나뭇잎들은 끝까지 놓치지 않고 돌보았습니다. 늦가을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지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잎인데, 그 강한 바람에 어미 나무는 새끼 나뭇잎을 거의 내 주지 않고 품고 돌보았습니다. 아직 이별의 때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나무는 필사적으로 새끼 나뭇잎들을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때가 왔을 때 미련없이 떨어뜨립니다. 때를 아는 나무, 때가 됐을 때 미련을 두지 않는 나무, 스스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 꽃을 피우는 나무… 나무가 성경 같습니다. 나무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할 수 없는 진지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무는 오직 태양과 물에 기댈뿐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만들어내고, 자신이 키워나갑니다. 완벽한 자가공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태풍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중의 새 들판의 꽃’에 관한 감동적인 시가 떠오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보라(마태복음 6:26-28)’ 공중의 새와 들판의 꽃 그리고 나무는 스스로 자랍니다. 말 못한다, 움직이지 못하다고 하여 어찌 미물이라, 일천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비를 맞고 방치되어 껍질은 썩거나 벌레 먹어 볼품없는 나무일찌라도 그 속은 살아있는 듯 고유한 빛깔과 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할 수 없구나’하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하는 순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무땔감을 쓰지 않는 시대에 나뭇가지는 처치 곤란한 쓰레기 신세가 되지만 정작 나무 자신은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채워져 있지 않은 속을 감추기 위해 소비가 미덕이라는 이념으로 무장한 채 외모에 치중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나무 명상을 통해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스스로 떨켜층을 만들어내 잎을 떨구고 겨울을 맞이하려는 나무의 자연스러운 삶을 닮는 인생길을 걷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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