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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감나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감나무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앙생활을 나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하시는 자매님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언제나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좋은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를 잘 맺는 모범적인 신앙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자매님이 얼마 전에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생생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신부님, 우리 마당에는 그다지 크지 않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올 해 거기에 먹음직스러운 감이 몇 개가 달렸지 뭐예요. 그 기분, 묘하더라구요. 그런데 몇 일 전 미사를 다녀오는데, 누군가 그 감나무에 달린 감을 찍어 먹은 흔적이 있음을 발견했지요. 그 순간, ‘아, 까마귀 요 놈들이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와 동시에 ‘내 감’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는 기분이 들더니, 탐스런 그 감이 아까워 아직 익지도 않은 감들을 그냥 다 따서 집 안으로 가져와 버렸어요. 그리고 방에 걸어 두면, 시간이 지나 자연히 익겠거니 하면서요. 그런데 그 날 저녁, 수능 시험을 앞둔 딸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것 같더니, 마당에 앉아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아 울어 버리더라구요. 가슴이 철컹 내려앉은 나는 마당으로 달려 나갔지요. 그런데 이유인 즉, 딸아이는 그 동안 아침, 저녁으로 학교 갔다 오는 동안, 탐스럽고 예쁘게 잘 익어가는 감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거예요.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 역시, 나에게 화를 내면서, ‘당신 때문에 우리 딸아이가 혹시 수능 시험이라도 잘못 치면 어떡하느냐’고, ‘성당에서 사랑, 사랑을 배운다는 사람이, 겨울을 나는 까치에게 그거 좀 나누어 주면 어디가 덧나느냐’며 ‘인정 사랑 없는 이기주의자’라며 나무라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말 보다, ‘감’, ‘까마귀’, ‘딸아이 수능’이라는 말들이 연상되면서, 순간 ‘내가 감을 따버린 것 때문에 혹시나 딸아이 수능에 지장을 주면 어떡하지’라는 말과 함께 또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거예요.”


이야기가 참 재미있게 흘러갔습니다. 이성적인 분이 ‘익지 않는 감’을 딴 행위와 ‘까마귀’와 ‘딸아이 수능’을 연결하는 것을 들으며 내 머리 속에는 ‘징크스’라는 단어가 불쑥 생각났습니다. 사전에서 보면 ‘징크스’라는 말은 본디 불길한 징후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 등을 말한다고 합니다.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한 날로 꺼리며, 4자(字)에서 죽음을 연상시킨다 하여 병실 번호 등에서 제외하고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거나 검은 고양이가 앞을 지나가면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운동선수나 기사(棋士) 등 직업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가지 징크스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징크스라는 것이 신앙인들에게 자주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각자의 종교 안에서 절대자를 믿고, 그 안에서 그 분이 이끄시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뭔가 부정적이고 불길한 것들 앞에서는 절대자에 대한 헌신과 믿음 보다는 그런 현상 앞에서 더 위축되고, 불안해하는 것이 인간인 것 같습니다. 인간, 참 위대하면서도, 스스로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과 공포에 떠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징크스가 참된 믿음 위에 웃도는 것을 보면서 말입니다.


아무튼 그 자매님 이야기를 들으며,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그 자매님은 쑥스러운 듯 말을 이어 갔습니다.
“부끄러운데… 암튼 까치 밥 감을 딴 것 때문에 혹시나 우리 딸아이 수능 시험에 뭔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감을 다시 감나무에다가 테이프로 붙였지요.”
“푸하하하, 하여튼 엄마 마음이란! 그래, 그 후 까치가 찾아오던가요?”
“그게… 아뇨, 안 오더라구요. 그래서 깨달은 것이 있지요. 내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마음속에 이기심이 가득 차 있고, 늘 나눈다고 하지만 우리 집 마당 감나무 감이 아까워 익지도 않는 감을 따 버리려는 것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지를 봤어요. 그리고 감 때문에 딸아이 수능 망치는 걱정을 하면서, 얼마나 사소한 것에 내 신앙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암튼, 우리 집 감나무, 올 해는 감 보다 더, 영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해 주더군요.”


앞으로 감나무에 열린 감을 볼 때 마다, 그 자매님 이야기가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이기심, ‘내 것’,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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