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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과 선한 치료

선한 마음과 선한 치료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음, 1년이나 지났을까, 거의 일 주일에 한 번씩, 치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창 신부님이 있습니다. 치과 치료를 다니게 된 발단은 예전에 운동장에서 야구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안면을 정통으로 맞아 심하게 다쳐 눈과 볼 주위 성형 수술까지 한 후에, 또 다시 치과 쪽에도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기간 치과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러 지금까지 꾸준히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 신부님은 치과 치료를 끝낸 후 나와 만날 일이 있어, 저녁에 약속을 잡고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치과 치료는 잘 다니고 있어? 그리고 오늘 치료는 잘 했어? 정말 지겹겠다! 아프지는 않아? 언제까지 다녀야 해?”


나의 연거푸 쏟아내는 질문에, 동창 신부님은 그냥 피식 웃으며, “응, 뭐, 잘 다니고 있지. 그런데 오늘 치과 치료를 다 끝낸 후에, 치과의사 선생님이 시간이 좀 있는지, 둘이 간단하게 차를 한 잔 마시게 되었어. 그 때 선생님으로부터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어!”


“치과 선생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일? 치아가 너무나 안 좋아, 그 선생님이 더 이상 치과 치료를 못하시겠대?”


장난치며 놀리듯,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창 신부님은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 전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들려주셨어. 어떤 일이냐면, 공교롭게도 몇 달 전 비슷한 시기에 이틀 간격으로, 중학생 남자 두 명이 치과 치료를 받으러 온 적이 있었대. 한 학생은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장난치고 놀다가 치아가 깨져서 왔고, 다른 학생 역시 친구들끼리 다투고 싸우다 다쳐서 왔대. 그런데 먼저 온 학생은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가 어떻게 합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마다 피해자 엄마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왔대. 그리고 의료진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하고, 치료가 다 끝나면 ‘선생님, 우리 아이 치료 잘 되고 있죠?’하면서, 자신보다는 아들이 잘 들으라고 큰 소리로 그렇게 말 하더래. 그리고 처음 진료를 왔을 때부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물었더니, 그 엄마는 ‘이 나이 때 남자 아이들은 다들 이러면서 크는 거죠’하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더래. 그리고 치료가 끝날 때 마다, 아들과 친구인 것처럼 팔짱을 끼고 병원 문을 나가더래. 아무튼 그 학생은 유난히 치료가 잘 되어, 끝내 치아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치료를 아주 잘 마무리하고 끝냈대. 그런데 또 다른 학생은 달랐어. 그 학생 역시 병원에는 엄마와 같이 왔는데, 그 엄마 옆에는 가해자 엄마를 꼭 데리고 나타나더래.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드는 비용부터 시작해서 모든 자잘한 것까지 부담을 지우더래. 그것도 모자라 가해자 엄마에게 ‘당신 아들이 우리 아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아느냐!’ 뭐 그런 식의 강압적인 분위기로 갖은 신경질을 다 내더래. 아무튼 그 선생님은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치과 치료를 하셨는데, 그 학생은 병원에 올 때마다 안 좋아지고, 또 안 좋아지고, 그러다 마침내 그 학생은 치아를 완전히 뽑게 되었대. 비용을 생각하면 가해자 부모에게 정말 안 된 일지만 말이야. 최선을 다했던 치료였지만, 썩 좋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된 거지! 그러면서 그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하였어. 환자든 보호자든 치료가 시작되면, 가장 필요한 것이 과거 일어난 일과 사건에 대한 잘잘못을 밝혀 누군가를 죄인 만드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좋은 치료가 되기를 바라는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 하더라. 그럴 때 결국 좋은 치유의 기쁨을 통해 보다 다시금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더군. 정말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의 선한 마음이 선한 치료를 낳는 것 같아!”


나는 즉석에서, “우리 신부님, 오늘 많이 아프셨어? 정말 힘들었지. 하지만 잘 낫게 될 거야” 하며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쓰는 시늉을 했더니, 동창 신부님 역시 싫지는 않는 듯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질 때, 선한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수많은 치료자들이 말씀하시더군요. 의료진의 좋은 기술도 중요지만, 그런 기술 너머 환자 및 보호자 서로가 보여주는 위로와 격려의 간절한 마음이 알게 모르게 의료진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고! 좋은 마음, 좋은 치료… 당연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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