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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老) 수도자의 작은 음악회

어느 노(老) 수도자의 작은 음악회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어느 평일 날 저녁,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 수사님께서 느닷없이 내 방에 오시더니 캔맥주를 사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수사님은 몇 일 동안 감기 몸살로 앓아누우셨는데, 갑자기 맥주를 찾으시기에 여쭈었습니다.
“수사님, 다 나으셨어요?”
그랬더니 그 수사님은 대뜸,
“맥주 한 잔 마시면 곧 나을 거야!”
평소에 그런 분이 아니시기에 좀 놀랐지만, 아무튼 맥주 캔 두 개를 사가지고 수사님 방에 갖다 드렸습니다. 
“수사님, 맥주 사왔어요!”
수사님은 웃으시더니,
“맥주는 시원할 때 먹어야 최고지.”
그렇게 맥주 한 캔을 ‘꿀꺽, 꿀꺽’하며 드시더니, 낡은 카세트에 테이프를 집어넣더니 음악을 틀어 주었습니다. 순간, 유명한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노래의 전주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수사님은 잠옷 바람에 벌떡 일어서시더니, 당신 방 불을 끄고 취침 등을 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내가 이 노래를 불러 주려고 맥주 사오라 그랬지!”
그리고는 노래가 나오자, 립싱크를 하듯 입 모양을 비슷하게 벙긋 벙긋 거리면서 실제 그 가수가 노래 부르고 있는 듯 한 몸짓을 하였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 다시 또 당신이 좋아하는 팝송 몇 곡을 계속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주변에 어둠이 깊이 내려 고요한 침묵만 흐르는 공간. 약간 열린 창틈으로는 맑은 바람 한 자락이 길에 들어오는 듯 하였고, 깡마른 체구의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음악가 한 분이 이불을 무대 삼고, 취침 등 불빛의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시는 모습! 노래하시던 내내, 한 평생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가난한 수도자로 살았던 그 삶을 보여주는 온화한 미소와 비장한 표정. 입은 벙긋거리면서 두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뻗기도 하고, 한 손 한 손 천천히 펴지며 모든 이를 다 포용한 듯 한 포즈도 취하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날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평소에 수사님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언제나 만나는 이웃 모두를 자신의 몸처럼 한없이 사랑하고 싶다던 수사님.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함께 곁에 사는 사람에게 먼저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던 수사님. 평생 홀로 독신의 삶을 살지만, 늘 함께 어깨동무 하며 이 길을 흔들림 없이 걷자던 수사님. 그 수사님의 평소 말씀들이 방 안 천장, 푸르른 빛 위에 코발트 별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몇 일 동안 감기 몸살이 더 심해지자, 형제들에게 부담주기 싫으신 수사님은 혼자 작고 여린 몸으로 감기 몸살을 이겨내고 싶어, 아니 좀 더 강한 몸짓으로 가벼운 감기조차 안간힘으로 이겨내고 싶어서, 당신 스스로 연출하고 노래했던 세상에서 가장 따스하고 아름다운 ‘작은 음악회’을 개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단지 맥주를 사다 드린 심부름에 대한 선물로 지상 최고의 음악회에 유일하게 초대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좌석에 앉아 그 원로 가수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을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 화려한 불빛에 잠옷 턱시도를 입고 코는 맹맹하고 쉰 목소리 그윽한 음성으로 노래하던 지상 최고의 어느 노가수의 공연! 정말이지 관객인 나는 눈물, 콧물로 감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의 그 감동은 내 자신을 한 동안 잠 못 이루게 하였습니다.
‘나도 과연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가슴 뭉클한 그 날, 밤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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