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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K 형제님을 떠올리며…

봄과 함께 K 형제님을 떠올리며…


해마다 봄바람이 불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짧은 머리칼과 긴 눈썹, 그리고 목에는 호수를 꽂고 있었고, 코에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던 K 형제님! 그 분을 처음 뵌 지는 16년 전 생활이 어려분 분들이 입원하시는 어느 병원의 병실이었습니다.


처음 그 분 병실에 갔을 때의 인상은 오랜 동안, 아무런 보호자 없이 혼자, 외롭게 누워 계신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한 달에 한 번, 그 곳 병원 환자들의 미사와 영적인 도움을 드리러 갔으므로 그 병원을 갈 때 마다, 그 분 병실에 가서 편안하게 만나곤 하였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내가 병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언제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힘든 몸을 일으켜 침상 위에 무릎을 꿇고 계셨으며, 특히 봉성체, 즉 미사 때 축성된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그러지 마시라고 그냥 침대에 누워 계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려도 한사코 손짓을 하면서 정중하게 무릎 꿇고, 눈을 감으시고는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나면 어린 아이처럼 환하게 그리고 밝은 얼굴로 내 손을 잡으시면서 가녀린 숨소리로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그 분을 뵐 때 마다 과거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다 지금 현재 순박한 모습으로 사시는 모습 그 자체를 뵙는 것으로도 기뻤습니다. 특히나 말 많은 요즘 세상 속에서 ‘침묵’과 더불어 자신의 오랜 병마와 친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숭고하기 까지 했습니다. 때로는 호흡 도중에 목에 가래가 끼면 굉장히 답답해하셨고, 그래서 급히 간호사가 달려 와서 목에 끼인 가래를 빼내 줄 때면, 고통스러운 표정은 지으시지만, 말없는 ‘침묵’으로 간호사의 손길에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분은 그 오래된 외로움을 ‘깊은 고독’으로, 찌든 가난함을 ‘맑은 청빈’으로, 의사소통이 안되는 가운데 병원 측의 어떤 지시에도 ‘침묵’으로 순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 세상의 구도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욕망과 사욕의 때를 거의 다 내려놓은 듯 사시는, 참 운치 있는 수도자 같았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힘들고 비참한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기도 속에서, 같은 병실에 누워 계신 분들과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에서는 뭔가 내 마음 한 구석을 꿈틀거리해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비록 목에는 구멍을 뚫어 가파른 숨을 내쉬고, 코에는 산소호흡기 마저 꽂고 있었기에 행동 하나 하나는 불편하셨지만 그런 외적인 것들엔 전혀 얽매이지 않고 ‘깊은 침묵’와 ‘기도’의 시간으로 자신의 삶의 시간을 보내는 그 분을 보면서, 당시 내가 가졌던 생각은 바로, 그 분은 이 추운 세상 안에서 봄의 기운을 알려 주는 봄바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내가 그 형제님을 마지막 본 날이었나 싶습니다. 그날따라 형제님은 굉장히 초췌했고,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표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무릎을 꿇고 영성체를 하시고자 하셨는데, 곧 쓰러질 듯 한 모습으로 기운 없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예식을 한 후에, 옆으로 누우시더니, 꾸깃꾸짓 쪽지 하나를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말을 못해서 죄송해요. 그 동안 감사 했습니다.’


그리고 힘든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어보여 주셨습니다. 나는 곧 “에이, 말 많은 사람들 보다 형제님의 침묵이 세상에 큰 울림이 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손을 꼬옥 잡아 드리고 병실을 나왔는데, 그 다음 달 그 병원엘 갔더니, 원목실 수녀님께서는 지난 번 마지막 다음 날, 임종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쪽지는 그 분이 내게 남겨 주신 마지막 유언이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형제님은 내 마음 속에 진정, ‘침묵의 자유로움’을 가르쳐주고는 봄바람처럼 차가워서 시원하게 왔다가, 생명 있는 것들을 보듬어 주듯 그렇게 그 바람을 타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만날 그 곳에 먼저 가셨습니다. 생의 모든 고통을 ‘침묵 속에 베인 웃음’으로 받아 안고서!


이 봄, 또 다시 시원해서 차가운 바람이 한 줌 붑니다. 머리가 아주 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올 해도 어김없이 이 바람 속에서 그 형제님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 집착하지 않는 ‘바람’같은 삶의 숨소리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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