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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떠날 때의 예의

직장을 떠날 때의 예의


원 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수아사리

  

하루하루 살다보면, 내 인생이 쳇바퀴처럼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아서 그날이 다 그날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출근했다 싶은데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있고, 회의 한 두 차례 하고나면 벌써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시간은 왜 이리도 잘 가는지 숨이 턱까지 찬다. 그것이 급속한 경제성장의 막대그래프를 만들어내는 바쁜 직장인의 하루다.


스님이 되고도 나는 직장생활을 한다. 물론 일반인들과는 다른 직장이다. 예전엔 불교학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3년쯤 일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매일 아침이면 방송도 한다. 그래서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2년 전에 연구소를 그만둘 때 일이다.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사건사고가 귓가에 들려왔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입을 닫고, 귀를 막았다. 떠나는 순간까지 왈가왈부하기 싫었다. 직장을 떠날 때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직장을 떠나고 싶을 때에는 적어도 세 번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본다. 성급하게 화부터 내서는 안 된다. 불교에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옛날에 굉장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두 남자가 그 사람에 대해 화를 잘 낸다고 했더니 곧장 달려와 화를 내더라는 얘기다. 화를 내지 않고 완벽한 자제심을 갖추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 잘 내는 사람으로 인식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니 적어도 세 번 정도는 참고 봐야 된다.


그런 후에 뭐가 문제인지 냉철한 눈으로 살펴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문제가 다 파악되면 그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코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원만한 생활을 위해서는 스스로 고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 번째 그만두고 싶을 때는 감정조절까지 되었으면, 그만둘지 말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건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제일 잘 안다. ‘이 일을 내가 정말 좋아하는가? 여기에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할 여지는 과연 내게 있는가? 그만 둔 후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세 번을 참고 난 뒤에 그래도 그만두고 싶다면, 그때는 과감하게 그만둬도 좋다. 세 번을 참고 견디며 일하면서도 아무런 보람이 없다거나,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는 게 낫다.


숱한 고민의 날들을 보낸다고 해도 다른 직장에 가도 별 수 없을 것 같고, 금세 새 직장을 얻는다는 보장 또한 확실하지 않아서 꾸역꾸역 분노를 되새김질 하면서 살 거라면 차라리 용기를 내어 결단을 내리는 편이 낫다. 도저히 용기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현재 직장에 잘 적응하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차피 떠나지 못한다면 불평은 자기의 인생만 좀 먹는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어느 쪽이든 신중하게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해라. 그것이 직장에 대한 예의이자, 내 삶에 대한 진정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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