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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날 광장에서

종교 칼럼


어느 날 광장에서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


저녁 8시가 가까워 오자 서울역 광장 북쪽 한 모퉁이에서 은은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장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저마다 손가방이나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아무도 지시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연주자를 중심으로 하여 작은 원을 이루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은 점점 커졌다. 바이올린 한 대가 더 합세하여 두 대가 되었다. 한 연주자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하자 다른 연주자가 화음으로 화답했다. 모여 선 이들은 너나없이 합창대가 되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루한 차림의 노숙인들이 하나 둘 슬그머니 다가와 노래에 동참했다. 광장은 졸지에 음악회장이 되었다.


플래시 몹을 변형한 홀리 몹 행사였다. 어떤 분이 추분이 지난 후 갑자기 날이 쌀쌀해졌는데도 여름옷을 입고 지내는 서울역 노숙인들을 딱하게 여겨 그들에게 따뜻한 옷을 전달하자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누가 동원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개인들이었다. 낯익은 얼굴도 더러 보였지만 대개는 낯선 이들이었다. 함께 부른 노래 몇 곡은 그 자리에 동참한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졌고,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바이올린 연주가 잦아들면서 녹음된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나눔의 자리에 동참한 데 대한 간략한 감사와 더불어 이제 서울역 지하보도와 광장 그리고, 육교 위에 있는 노숙인들을 찾아가 사랑을 전하자는 간략한 제안이었다. 사람들은 모일 때 그랬던 것처럼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각자가 준비해 온 것을 나눴다. 따뜻한 점퍼, 바지, 양말 그리고 마실 것 등이었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노숙인들은 더 이상 도시 미관을 해치는 불쾌한 풍경이 아니었다. 잠시 설 자리를 잃은 우리의 이웃이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도 있었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이들도 있었고,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물끄러미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문득 저분들의 얼굴에 따뜻한 온기와 표정을 회복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동행했던 교우들 몇 분과 함께 찻집에 들어갔다. 그 가운데 한 분은 매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물건을 준비해서 주최측에 전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노숙인들이 있는 현장을 찾아가 그것을 직접 전달하게 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초의 당혹감이 지나고 나자, 말할 수 없는 연민이 자기 마음을 채우더라며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 값싼 동정이 아니었다. 얼떨결에 고통받는 세상과 대면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신성한 기운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던 피에르 신부는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가 그것이다. 즉 세상에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자냐 비신자냐 하는 구분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할 줄 모르는 종교는 박제화된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울고 있을 때 곁에서 웃지 않는 것이 인간됨이다.

  

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의 개혁자였던 사보나롤라는 ‘사랑을 해치는 자가 바로 파문당한 자’라고 말했다.


분노와 적개심을 부추기는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냉소와 조롱과 경멸의 말들이 횡행한다. 그런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몸과 마음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언제든 화를 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처럼 처신한다. 작은 손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노예가 되어 오늘도 기신없이 살아간다. 그런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 그것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존재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더 깊은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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