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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자신의 선택만 책임질 수 있다면 다 괜찮다

원 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수아사리


내 주위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커리어여성들이 많은 편이다. 옛날 같으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결혼이 늦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개가 각 분야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지닌 여성들이어서 오히려 더 당당하고 멋있어 보인다.


하루는 이 가운데 한 친구가 자기 친구라며 데리고 와서는 내게 상담요청을 했다. 자기 친구가 3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현재 결혼 얘기까지 오가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너무 좋은 일이라며 얘기를 듣자마자 얼른 축하해 주었는데, 말하는 이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고 보니, 너무도 아픈 상처가 있었다. 내가 듣기에도 이성의 스킨십을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은 과거였다.

 
그녀는 여고시절 겪었던 한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했다. 실제로 그 사건은 그녀의 성격, 대인관계, 사회생활 등 일상의 모든 것에 걸림돌이 되었으며, 지금도 인생의 반려자 앞에서 또 다시 높은 벽을 치고 있었다. 그런 아픈 경험이 없었더라면 훨씬 더 밝고 아름답게 살았을 텐데, 그 잔인했던 기억의 저편에서 그녀는 꿈쩍 않고 아파하고 있었다.


막상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숨이 났다. 그녀의 음울한 기억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연민의 마음이 생겼지만, 되도록 표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말해야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물었다. 말을 하자니 남자가 떠날 것 같고, 말을 안 하자니 너무 괴로워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 이 일을 어쩌나.’ 잠시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내 입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제 생각엔 말을 하고 안 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말한 이후의 결과와 말하지 않고 발생한 일의 결과를 온전히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죠. 어떤 선택을 하던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대했을 때, 묵묵히 달게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만 있다면 어느 쪽이든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세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본인이 선택한 그것이 최선일 겁니다. 결과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가 자기 선택의 결과를 수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어떻게 선택할까를 고민하고, 어떤 길로 갈까를 망설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선택을 했을 때 이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저 선택을 했을 때 저 결과는 또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에 대해서는 준비를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인생의 승부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의 망설임과 고민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에 따른 결과를 자신이 얼마만큼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자신의 선택만 책임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괜찮다고 본다. 다가올 일을 걱정하거나 불행을 예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현명하고 성실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중요하단 얘기다. 욕심대로 다 채울 수는 없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비워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비우려는 노력, 원하는 무엇인가를 채우려는 노력 말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불교의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