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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

종교칼럼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박두진의 ‘해야 솟아라’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이런 시구를 얻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새롭게 된 시간’이다. 누추하고 던적스러운 일상에 지친 이들은 시간이 새롭게 갱신되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주기적으로 갱신하기 위해 마디를 만들었고, 새해도 그 마디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대형 건물에 내걸려 유명해진 반칠환의 ‘새해 첫 기적’이라는 시는 시간이 왜 위대한 갱신자인지를 이렇게 보여준다. “황새는 날아서/말은 뛰어서/거북이는 걸어서/달팽이는 기어서/굼벵이는 굴렀는데/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삶의 속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새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당도한다. 하지만 새해가 되어 달력을 바꿔 걸고, 수첩을 바꾸고, 전화번호부를 정리해 보아도 삶이 새로워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삶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객관적으로 계측 가능한 시간인 크로노스와 주관적으로 경험되는 시간인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아무리 권태롭다 해도 서두르는 법이 없고,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무심한 시간이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공평한 시간이다. 그야말로 ‘속절없다’는 말 뜻에 부합하는 시간이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라고 노래할 때의 그 시간이다. 그에 비해 카이로스는 경험하는 주체에 따라 밀도가 달라지는 시간이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뜻 그대로 한 순간이 마치 몇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긴 세월이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삶은 길고 짧음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밀도를 어떻게 만들며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에 떠밀려 사는 이도 있고 시간을 타고 사는 사람도 있다. 시간에 떠밀리는 이들에게 남는 것은 아쉬움과 후회이고, 시간을 타고 사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감사와 기쁨이다. 속도와 효율을 최대 덕목으로 생각하는 현대세계는 사람들이 시간을 느긋하게 누릴 수 없도록 만든다. 생산과 소비와 폐기의 순환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진다. 분절된 시간만 허락받았기에 현대인들은 늘 조급증에 시달린다. 동작과 생각이 냅뜬 사람들조차 여백없는 시간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


어느 사회학자는 현대 세계를 시간의 향기가 사라진 세상이라 말했다. 때를 앞당기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신과 주변을 황폐하게 만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영혼의 자서전’과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들려주는 한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그는 산길을 걷다가 올리브나무에 매달린 유충을 발견했다. 유충을 떼어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가만히 들여다보니 투명한 꺼풀 속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생명이 깨어나는 비밀의 과정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았다. 그는 아직 고치 속에 갇혀 있는 미래의 나비가 햇빛으로 뚫고 나올 성스러운 시간을 기다렸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기 원했지만 그 깨어남의 시간은 너무 더뎠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유충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유충의 등이 찢어지더니 연둣빛 나비가 나왔다. 나비는 힘겹게 날개를 펴려고 애썼지만 날개는 겨우 반쯤 펴지다가 멈췄다. 조바심이 났지만 나비는 영영 날개를 펴지 못했다. 영원한 법칙을 어기고 서둘렀기에 나비를 죽이고 말았다는 자책감이 아주 오래도록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이 이야기 끝에 카잔차키스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작품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지만, 신의 작품은 결점이 없고 확실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영원한 법칙을 다시는 어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나무처럼 나는 바람에 시달리고, 태양과 비를 맞으며 마음놓고 기다릴지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꽃과 열매의 시간이 오리라.”
서두르지 않는 신의 시간에 순응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리 숨은 한결 가지런해질 것이다. 어쨌거나 새해라는 선물이 우리 앞에 왔다. 이제 새 마음으로 길을 떠나야 한다.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