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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종교칼럼

뜻하지 않게 동료 교무님의 권유로 경복궁 야간개방 관람을 가게 됐다. 십여년 전에 서울, 그것도 경복궁 주변에서 살때도 가지 않던 곳을 시간들여 공들여 가는 아이러니라니…원래 그 고장에 살때는 옆에 두고도 가지 않던 곳을 다른 지역에 가서야 애써 찾아오지들 않던가!

먹거리 볼거리가 많은 삼청동 골목을 거닐다 전에 가본 적이 있는 단팥죽집 앞을 지났다. 그냥 내부를 힐끗 들여다보며 지나치려는데 때마침 눈이 마주친 주인 할머니가 곧장 뛰쳐나와 화들짝 반가운 낯빛으로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니트 모자를 눌러쓴데다 자유복장이어서 내 신분을 알기 어려울텐데… 내가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데는 타고난 특기가 있긴 해도 정말로 처음 보는 얼굴 같아 순식간에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당황하긴 그쪽도 마찬가지, 사람을 잘못 보신 것이다. 아시는 모 교수님의 사모님과 너무 닮아 착각했단다. 말하자면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이다! 멈춘김에 들어가 팥죽 한그릇을 주문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한사코 손을 물리며 돈 받기를 사양하신다. 이 가게가 왜 문전성시를 이루는지 그 비밀이 읽혀져 마음이 훈훈했다. 

무엇보다 그집 이름이 명물이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집!’ 이토록 여유로운 상호가 또 있을까. 간판을 보는 이 누구나 순간적이긴 할테지만 자연스레 의문을 던지게 만들겠지. ‘왜 첫째가 아니고 둘째야?’ 그 문구는 깊든 얕든 나름의 철학적인 사유를 이끌어내어 한번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화두같은 힘이 있다. 아님 적어도 ‘그 한발 물러선 듯한 삶의 태도에서 나왔을 법한’ 글귀에 긴장을 풀고 피식 웃음이라도 짓게 할테니 그 집 주인은 이미 뜻하지 않은 복을 짓고 있는 셈이다. 

그래! 둘째가 되려는 삶의 태도는 참 좋은 것 같다. 그러리라 작정하고 사는 사람은 누군가 나보다 나아도 마음 불편할 일이 없겠지. 상대적인 가치에서 추구하는 최고나 일등에 대한 집착이 우리 영혼을 얼마나 고독하고 말라붙게 만들어 왔던가. 무조건 일등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신의 역량을 최고로 끌어낼 여유가 들어선다. 그래야 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최고가 된다! 일등과 메달에 집착하면 그 스트레스가 능력발휘를 방해하고,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아픔을 주는 삶을 만들기 쉽다. 둘째가리라 표준하고 사는 이는 잘되면 감사요 잘못돼도 문제될 게 없다. 남과 다투지 않는 삶의 태도는 마음의 평화와 몸의 건강과 관계의 상생과 일의 성공을 저절로 줄줄이 끌어다 줄 것이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남에 의해서 내 인생이 좌우되지 않은 채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율적인 삶에 대한 존엄한 선언! 상생과 겸허함, 그 편안한 내려놓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발길이 이어지게 하는 명소가 되었으리라.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 베푼 6천원 어치의 공양으로 삼청동 하늘을 떠올릴 때면 절로 넉넉한 미소가 머금어질 것 같다.

장오성 교무
원불교 송도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