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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로 나부끼다

종교칼럼

10여년 전, 붉은색으로 넘치던 광장이 이제는 노란색 물결로 일렁인다. 열광과 환희의 함성 대신 숨죽인 흐느낌이 번져간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가슴에 단 노란 리본, 광장에 내건 깃발, 그리고 기억의 장소마다 붙여놓은 노란색 포스트잇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뼈저리게 자각했다. 죽음을 예감한 이들이 절박하게 내민 손을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그저 버려진 것이었다. 그들은 잉여인간, 혹은 호모 세케르 취급을 받았다. 죽어간 이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식의 모습을 보았고, 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누구도 고통이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일 수 없다.

분향소 앞,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노란색 깃발은 마치 죽어간 이들의 넋인 듯하여 나는 그저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돌아선 채 눈물을 훔쳤고, 또 어떤 이는 처연한 표정으로 두 손을 그러쥔 채 영정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애도의 물결을 막으려는 이들, 애도가 분노로 화하지 않을 방도 찾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에게 저 펄럭이는 노란색 깃발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분향소 앞 광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데 유치환의 ‘깃발’이 떠올랐다. 상투적인 연상작용이 부끄러웠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흔들리는 깃발을 보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는 이가 곧 시인이다. 그의 문장을 통해 우리도 이 시대의 아우성을 듣는다. 그러나 지금 광장마다 내걸린 깃발은 우리를 ‘애수’의 정한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잊지 않겠다는 결의이다. 그들을 성급하게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하냥다짐이다. 신은 무고하게 죽임당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잊어도 신은 잊지 않는다. 신은 우리가 동료 인간에게 지은 죄를 당신이 받는 모욕으로 간주하신다.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란색 깃발이 일렁이는 광장에서 지그시 눈을 감자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밀밭 위를 나는 까마귀’였다. 프러시안 블루에 가까운 하늘빛, 격렬하게 일렁이는 밀밭이 내뿜는 노란빛, 그리고 그 사이를 낮게 나는 까마귀의 검은빛. 그 빛들은 서로 섞이지 않았다. 조화를 이루기 위한 조바심조차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과 불화하고 있던 고흐의 내면 풍경이었으리라. 그 그림에는 세 갈래 길이 나온다. 화면의 좌우로 뻗은 길은 테두리에 의해 단절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그 단절된 길이 유난히 아프게 느껴진다. 예기치 않은 시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온 죽음과 대면해야 했던 젊은 넋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길, 밀밭을 가로지르는 중앙의 길은 아직 열려 있다. 소실점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길은 아직 단절되지 않았다. 까마귀들이 그 위를 난다. 어떤 불길한 징조를 느낀 것일까? 하지만 까마귀는 죽음의 상징만은 아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까마귀는 봄을 예고하는 전령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아침 대성당에 많은 까마귀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곧 봄이 오고, 종달새가 돌아오겠지. 성경은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고 씌어있다. 신이 대지의 표면을 새롭게 하듯이, 사람의 영혼과 마음과 가슴에 힘을 불어넣고 새로이 하실 수 있겠지?”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는 것은 신의 일인 동시에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저 광장에 나부끼는 노란색 깃발은 우리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세상의 고통에 눈을 감은 채 얻는 안일한 행복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이들은 이 세상에서 다하지 못한 자기들의 삶의 이야기를 완성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