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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기적이다

종교칼럼

아침 출근길에 종종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과는 눈인사를 나누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헤어 스타일이 남달라 눈에 띄던 아이가 있었다. 남학생인 데도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인상적이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 이제는 의젓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학생과 마주칠 때마다 세월이 그렇듯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곁을 지나치며 학생을 위해 화살기도를 날린다. “저 학생의 가슴에 하늘의 따뜻한 기운과 생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

언덕 위에 있는 학교 후문에 마치 풍경처럼 서 계신 분이 있다. 처음에는 선생님인 줄 알았지만, 그는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하는 분이었다. 그는 벌써 여러 해 째 그 자리에 서 있다. 처음부터 눈인사라도 나눴더라면 좋았을 것을, 매일 마주칠 때마다 괜히 무안해져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쩍 눈길을 피하곤 한다. 소심한 내 성격을 탓할 수밖에 없다. 괜히 빚진 마음이어서 어느 날부터인지 그분의 모습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화살기도를 날린다. “저 아름다운 헌신을 기억해주시고, 부디 건강 잃지 않게 지켜주십시오.”

아침마다 집을 나서 하루 종일 공원을 산책하는 아주머니도 가끔 마주친다. 마주친다고 했지만 그 아주머니는 남들과 절대로 시선을 섞지 않는다. 땅만 바라보며 아주 이상한 음률과 언어로 흥얼거릴 뿐이다. 남들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세계 속에 유폐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분을 볼 때에도 절로 화살기도를 날리게 된다. “저 가슴에 깃든 어둠이 있다면 그것을 빛으로 바꿔주십시오.”

보행이 임의롭지 않은 할머니도 가끔 마주친다. 숨이 가쁘신지 10여 미터 걷고는 멈추어 서시곤 한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짜증도, 권태도, 원망도 없다. 멈추어 설 때마다 옆을 지나치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미소를 건네신다. 활기차게 걷는 젊은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가끔은 축대 사이에 핀 풀꽃에도 세심한 눈길을 준다. 마치 그것을 보기 위해 멈춰선 것처럼. 얼굴에 주름은 많지만 그 얼굴빛이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그 할머니를 보면서 또 화살기도를 날린다. “저 할머니의 느린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사랑의 샘이 솟아나게 해주십시오.” 며칠 전에도 그 할머니와 마주쳤다. 문득 서홍관의 시 ‘어머니 알통’이 떠올랐다. ‘나 아홉 살 때/뒤주에서 쌀 한 됫박 꺼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내 알통 봐라” 하고 웃으시며/볼록한 알통을 보여주셨는데,//지난여름 집에 갔을 때/냉장고에서 게장 꺼내주신다고/왈칵 게장 그릇 엎으셔서/주방이 온통 간장으로 넘쳐 흘렀다.//손목에 힘이 없다고,/이제 병신 다 됐다고,/올해로 벌써 팔십이시라고.’ 세월이 참 무상하다. 하지만 그게 인생인 걸.

살아있는 것은 다 신비하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넋이 빠진 채 볼 때가 있다. 건기가 되어 오랫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한 육식동물들이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릿하다. 풀을 뜯으면서도 귀를 쫑긋쫑긋 하며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 초식동물들을 보면 애처롭다. 모두가 살려는 생명이다. 민물고기들이 산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암컷 물고기는 수심이 너무 깊지도 낮지도 않은 곳을 선택한다. 수심이 너무 깊으면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부화율이 떨어지고, 수심이 얕으면 천적들의 공격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유속도 아주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물살이 너무 빠르면 알이 떠내려가기 쉽고, 너무 느리면 유기물이 달라붙어 부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적당해야 생명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피고 지는 들꽃 같아, 바람 한 번 지나가면 곧 시들어, 그 있던 자리마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삶이 참 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여기에 없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무상한 삶을 살면서도 불멸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내가 기적인 것처럼,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이들은 기적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자기 생명이 기적인 줄 모르는 이들만이 타자를 함부로 대한다. 그들은 내면의 허무주의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화살기도를 드린다. “저분들도 생명의 신비에 눈뜨게 해주십시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