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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속에서 일어서는 엄마

종교칼럼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 외곽에 있는 ‘아르메니아인 학살 기념관’을 찾아갔다. 이 나라는 자국의 아픔의 역사를 그 기념관 속에 새겨놓았다. 아르메니아의 근현대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문제였다. 1877년에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보수적인 무슬림들이 터키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씌워 그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아르메니아인들도 격분해서 대응 폭력에 나섰다. 그러자 당시의 집권 세력인 청년 투르크 당은 자국 내에 있던 지도적 아르메니아인들 253명을 처형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 법. 1894년에 오스만 제국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 와중에 2만여 명이 희생당했다. 수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과 1916년 사이에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가 다시 격돌했다. 이때는 아르메니아인들 다수가 러시아군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오스만 투르크는 자국 내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내통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그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강제 노동과 사막지대로의 강제 이주가 실시되었고 마을은 불태워졌다. 그런 집단 학살에 대해 국제사회는 침묵했다. 터키는 지금도 이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 책임을 인정할 것을 자국 정부에 요구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극우주의자들의 살해 위협 뿐이었다.

인종 청소 혹은 학살처럼 반인간적인 폭거가 또 있을까? 20세기에만 해도 피부색, 종족, 종교, 문화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인종학살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찌 독일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에 비해 덜 알려지고 있지만 수많은 집시들과 장애인들이 죽임당했다. 1992년에 발발한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내전, 1994년에 르완다에서 벌어진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집단 학살은 인류가 아직도 원시적인 폭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유엔은 1948년에 제정한 ‘인종말살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협정’에서 인종 말살을 “국가 집단, 민족 집단, 인종 집단, 또는 종교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저질러지는 다음과 같은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 행위에는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는 행위는 물론이고 그들의 신체나 정신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행위, 집단의 파괴를 목적으로 대상자들의 삶의 환경에 고의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 출산 저지, 강제 이송 등의 행위가 포함된다. 아, 이런 행위는 얼마나 악마적인가? 하지만 이런 행위는 미개한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가 못 사는 나라를 대상으로 하여 이런 일을 벌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 실험도 그중의 하나이다.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자행된 인종학살은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르메이나인 인종학살 기념관은 아르메니아의 12 부족을 상징하는 12개의 사다리꼴 모양의 기둥이 원을 이룬 형태로 되어 있다. 그 기둥은 안으로 굽어 있어 내부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이콘에서 수도자들이나 성인들이 머물고 있는 바위산이 마치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위해 고개를 숙인 것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것과 유사했다. 사다리꼴 기둥들이 만든 원의 중심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는 불꽃은 마치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혼이 추는 춤처럼 보였다. 그 앞에 추모의 꽃 한 송이를 내려놓고 죽어간 이들의 넋을 기렸다. 그리고 지금도 인종학살과 유사한 고통 속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광장을 돌아나오다가 매우 인상적인 동상 하나와 만났다. ‘잿더미 속에서 일어서는 엄마’라는 제목의 이 동상 아래 부분에는 1915년의 학살에서 죽어간 이들과 생존자들 그리고 탈출한 이들을 기억하고, 기독교 신앙과 그 전통 위에 굳게 서있는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자행된 잔혹행위를 잊지 않기 위해 이 동상을 세운다는 헌사가 붙어 있다. 공포에 질린 아이를 역시 놀람에 사로잡힌 어머니가 부둥켜 안고 있다. 맨발의 그 어머니는 겁에 질려 그 자리에 그저 주저앉아 있지 않다. 잿더미 같은 절망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위험을 피해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아이를 살려야 하니까.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현재진행형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인류는 언제나 우정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