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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붙들어야 할 것

종교칼럼

유럽의 몇몇 도시들을 떠돌다 돌아왔을 때 만나는 이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묻는 질문이 있었다.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어요?”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어요?”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글쎄, 어디가 좋았던가?” 하며 뜸을 들이면 답답하다는 듯이 “그래도 마음에 가장 남는 곳이 있을 것 아니에요?”라며 대답을 다그친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몇몇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실상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다. 그것도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나 잘 아는 이가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들 말이다.
 
이탈리아의 트레 폰타나 성당에서 나는 하얀 행주 같은 걸레를 들고 장의자를 닦고 또 닦는 노수녀의 모습을 숨죽이고 바라본 적이 있다. 그의 걸레질은 기도였다. 시인 고진하는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빨고 또 빤 행주를 가지고 날마다 장독대의 항아리를 말갛게 닦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장독대야말로 어머니의 성소였다고 노래한다. 법고 소리를 듣고 싶어 산중에 있는 사찰을 찾아갔다가 깨끗하게 비질된 절 마당을 보는 순간 마음이 정갈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파리의 뒷골목을 걷고 또 걷다가 다리쉼이라도 할겸 찾아 들어간 작은 예배당에서 블루진 차림의 중년 사내가 장궤 자세로 깊은 침묵에 든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 그가 겪어 왔을 혹은 겪고 있을 신산스런 삶이 느꺼워져 울컥해지기도 했다. 연약함은 사람을 하나로 묶는 끈이 되곤 한다. 잘츠부르크의 카푸친 수도회를 찾아 올라가던 길에서 만난 요한교회, 가만히 문을 열다가 나는 뜻밖의 광경과 마주쳤다. 텅 빈 예배당, 제대 앞에 엎드려 기도를 올리고 있는 수도자의 모습이었다. 그 고요한 엎드림이 얼마나 단단했는지 조용히 문을 닫고서 문 뒤에 서서 그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조지아의 동굴 수도원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그 수도원의 역사에 관한 책을 구입하려고 찾아간 기념품 가게에서 내가 만난 것은 기념품이 아니라, 마치 탈진한 듯 보이는 젊은 수도사 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이 오든말든, 누가 뭘 묻든말든 불편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뜰 생각이 없었다. 그는 영락없이 아케디아(acedia)에 빠져 있었다. 아케디아는 은둔한 채 수도에 정진하는 이들이 빠질 수 있는 영적 태만의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마치 생명의 기운이 다 소진된 듯 만사가 귀찮아지는 현상이다. 그 젊은 수도자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나는 거의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었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찾아들어가 그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쯤은 아케디아를 극복하고 용맹정진하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는 찢겨진 세계의 치유와 화해를 지향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그곳을 방문했던 이들은 한결같이 떼제에서 진정한 환대의 정신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나라 인종 피부색 이념 종파의 차이를 넘어 모든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이다. 누구도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고쳐주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곳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꽃동산이다. 공동체 입구에는 작고 소박한 예배당이 하나 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침묵의 세계에 초대받았음을 느낀다. 정면의 앱스를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 그리고 완강한 침묵이 낡은 장의자에 머물고 있다. 언제 가든 제대 앞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엎드린 이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대개 한 시간 이상 고요히 엎드려 있다. 그 침묵의 시간은 상처입은 자기 영혼을 지존자에게 내놓고 치유를 기다리는 시간일 것이다.

고통과 상처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말은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뜨면 보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서만 당도할 수 있는 세계와 접속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면에 ‘그늘’이 없어 주변을 백색의 지옥으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사람 속에는 연약한 것들을 보듬어 안으려는 마음이 있다. 측은지심이 그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소리가 세상을 전장으로 만들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하는 것은 연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다.
김기석 목사/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