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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종교칼럼

갑자기 여수에 가지 않겠느냐는 지인의 제안을 받았다. 연말이라 분주했지만 ‘놀자’는 청에 응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러겠다고 말했다. 일상적 분주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던 차에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쌓아두고 떠나는 여정인지라 미묘한 설렘도 느껴졌다. 미끄러져서 조금 발을 접질려 서리병아리처럼 추레하게 걸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흔흔했다. 기차가 서울을 벗어나자 눈에 덮인 산하가 눈에 들어왔다. 비어 있기에 더욱 충만만 빈 들에도, 서부렁한 겨울 숲에도 흰 눈의 은총이 내려 앉아 있었다.

눈 덮인 바깥 세상을 보며 피터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1565년)도 떠올렸다. 저 멀리 가파르게 솟구친 설산이 보이고, 나무 위에는 까마귀가 앉아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는 많은 이들이 몰려나와 겨울을 즐기고 있다.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 팽이치기 하는 아이들, 썰매를 끌어주는 사람들, 집 가까운 곳에서 추위와 맞서듯 불을 지피는 사람들, 그리고 많은 사냥개를 거느리고 사냥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수확은 보잘 것 없다. 쓸쓸하지만 아름답다. 브뤼겔은 풍경 속에 녹아든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아, 그런데. 지금 우리의 겨울 풍경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까?

풍경이 무료해지면 들고 간 책에 눈길을 주었다. 감옥에 갇힌 남자와 감옥 밖의 여자가 주고 받은 연서를 읽는 동안 조급함은 사라지고 마음 가득 연민이 차올랐다. “거절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너무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점점 더 자유롭고 확신 있게 ‘예’라고 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사실 앞에 감옥의 모든 창살은 부서져 나가고, 당신은 내 곁에 있습니다. 그러면 꼭 잠긴 문 따위가 어쩌겠습니까.” 참 좋다. 감옥의 모든 창살, 꼭 잠긴 문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사랑의 힘.

마중 나온 후배의 차를 타고 거북선 대교를 건너 돌산에 들어갔다. 바닷가 마을에 있는 돌로 지은 조촐한 예배당에서 10년 째 일하고 있는 후배는 목회자인 동시에 번역가이고, 정원사이기도 하다. 봄과 여름이면 예배당 앞 뜰에 있는 ‘비밀의 정원’에 수 백 종의 꽃들이 피어난다. 그는 겨울 정원이 너무 쓸쓸하다며 속히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뭇잎과 꽃잎 하나하나에 깃든 신비에 깊이 감탄하는 신비가인 그에게도 겨울이 힘들긴 한 모양이다. 호랑가시나무는 빨간 열매를 맺은 채 씩씩하게 서 있었고, 한데서 겨울을 나야 봄에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콩난은 추위에 파랗게 질려 있었다. 꽃대 끝에 이미 꽃방을 품고 있는 수선화는 늠연한 자태로 겨울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창고에는 잘 갈무리된 알뿌리들과 가을에 받아 놓은 꽃씨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식생과 특징을 말할 때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수 천 권의 시집과 다양한 책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서재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나눈 대화가 흐뭇했다. 더러 시집을 꺼내 한 구절씩 읽어주기도 하면서. 조팝나무에 앉기 좋아하는 참새 이야기며, 물의 맥을 짚는 맥 낚시 이야기며, 그 옛날 궁상스런 산동네에서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풀어지고 하던 하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껍질에 칼집을 낸 밤을 화롯불에 묻어둔 채 이야기꽃을 피웠던 옛 식구들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를 짓누르던 일상적 시간은 소거되고 원형적 세계가 우리 앞에 현전했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마음 한켠에 아련한 아픔이 배어들었다. 그런 기억들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가? 오늘 우리 삶은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 함께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느끼는 헛헛함의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밖으로 나와 차가운 밤 하늘에 총총히 뜬 별을 바라보고,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의 리듬을 헤아려 보는 동안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울울한 기운이 어느 결에 스러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벗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좋은가?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쯤은 잠시 유보해놓고 오직 삶에 대한 이야기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한 복이 또 있을까? 입장의 차이를 넘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또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우리 생에 주어진 작은 선물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가끔 일상으로부터 훌쩍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저만치에서 손짓하여 부르는 벗이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을 것이다.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