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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말

종교칼럼

벌써 25년이 흘렀다. 몇 해 동안 몸 담고 있던 학교를 떠날 때 나는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를 인용하여 작별의 말을 대신 했던 것 같다.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삶은 흐름이니 우리도 인생의 어느 구비를 돌보다 문득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의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기억을 건져올리다가 반갑게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던가? 사람 뿐이던가. 우리가 발설했던 말들도 세상을 떠돌다가 말의 주인에게 귀환하곤 한다. 발화된 말은 누군가의 가슴을 울려 어떤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되기도 한다.

아주 오래 전 어수선한 세상 일에 시달릴대로 시달리다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내게 존경하는 어른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장기적인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하여 한숨을 내쉴 건 없네. 지금 여기서 자네가 내디뎌야 할 한 걸음만 생각하게. 그렇게 걷다 보면 어둠이 물러가지 않겠나.” 너무도 또렷한 꿈이어서 즉시 일어나 꿈을 기록했다. 그 ‘한 걸음’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한동안 바위를 타는 일에 몰두했었다. 직벽에 가까운 암벽에 달라붙는 일은 위험한만큼 스릴이 있었다. 바위에 붙어있는 그 시간만큼 순수하고 오달진 시간을 또 경험할 수 있을까? 암벽을 탄다는 것은 길 없는 곳에서 길을 찾는 고된 작업이다. 한 걸음을 내딛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또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순간이 참 짜릿했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영국 유학 중에 형편이 어려워져 잠시 국내로 돌아와 일을 해야 했던 13년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남산길을 함께 걸으며 내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큰 힘이 되었노라고 말했다. 산을 오를 때 정상만 바라보고 걸으면 힘이 들지만 한발짝 앞만 보고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가닿게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랬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 것 아닌 말이었지만 그 말이 그에게는 힘이 되었던 모양이다. 2년을 그렇게 애쓴 후에 남은 학업을 위해 영국으로 돌아갈 때도 그는 나를 찾아왔고 나도 격려 삼아 몇 마디를 건넸던가 보다. 그는 내가 인도의 성자 선다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말했다. 몸이 건강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 설산을 몇 번씩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년의 성자는 ‘산을 넘기 전에 정신의 키를 산보다 높이면 능히 넘을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할 수 있다’ 류의 담론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레 주눅이 들어 삶이라는 모험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가끔 인용하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가 그의 고된 영국 생활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무섭다. 오늘 우리 입을 통해 나간 말이 뭔가를 하고 있다. 그 말은 세상을 떠돌다가 언젠가는 내게로 돌아온다. 나희덕은 ‘호모 루아’(*Homo Ruah, ‘Ruah’는 히브리말로 ‘숨결’ ‘입김’을 뜻함)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호모 파베르이기 전에/호모 루아, 입김을 가진 인간//라스코 동굴이 폐쇄된 것은 사람들이 내뿜은 입김 때문이었다고 해요/부드러운 입김 속에/얼마나 많은 미생물과 세균과 독소가 들어 있는지/거대한 석벽도 버텨낼 수 없었지요”. 시인은 자발없는 말의 세계에 지친 것일까? 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분노가 고인 침으로/쥐 80마리를 죽일 수 있다니, 신의 입김으로 지어진 존재답게 힘이 세군요. 그러니 날숨을 조심하세요/입김이 닿는 순간 부패는 시작되니까요”.

조롱하는 말, 냉소의 말, 이간질하는 말, 악담, 겉꾸민 말, 입찬 소리, 기어코 상대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야 말겠다고 작정한 것 같은 거친 말, 거짓말이 횡행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어야 할 말이 오히려 그들 사이를 버름하게 만들고 있다. 성경도 참으로부터 멀어진 말의 위험을 신랄하게 경고하고 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젠가는 내게로 돌아온 말이 나리꽃 향기를 품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