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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시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암담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선원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시인은 바람과 물결에 시달리던 선원들이 고통 속에서 부르짖자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라고 노래한다. 이 구절을 반복하여 읽으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현실 속에서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렁이는 바다 물결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이들이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그리고 내전에 가까운 상황에 내몰려 자유의 새 땅에 당도할 희망을 품고 리비아 해안을 떠났던 700여 명의 아프리카 난민들 말이다. 희망의 여정은 죽음으로의 항해가 되었다. 도움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다. 검푸른 바닷물결 속에서 기적같은 도움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절망을 떠올리니 숨이 막힌다. 절망의 바다는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 거리와 광장에서도 넘실거리고 있고, 굴뚝 위에서도 일렁이고 있다.

문득 “가자” 하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범선의 ‘오발탄’에 나오는 송철호의 어머니가 시도때도 없이 외치는 소리이다. 철호의 어머니는 실향민이다.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전부터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던 말이 “가자”이다. 어머니는 죽어도 고향에 돌아가 죽어야 한다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난민이 되었다. 철호의 동생 영호는 모두가 약삭빠르게 자기 잇속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알량한 양심을 지키며 살려는 형이 답답하다. 그래서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던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영호가 처음부터 이렇게 엇나갔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세상에 멀미를 하고,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 명숙이가 양공주로 사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무능을 곱씹으면서 그는 엇나가리라고 작정한 것이다. 그것은 가치가 무너진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다. 자기를 망가뜨림으로 망가진 세상에 보복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자학이 아닌가. 작가는 그런 어긋남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마다 “가자”라는 어머니의 외침을 불러낸다.

철호 또한 길을 잃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아기를 낳다가 병원에서 죽었고, 영호는 강도질을 하다가 체포당했고, 뜻하지 않은 치통으로 어금니 몇 개를 뽑아야 했다. 그는 택시 기사에게 어머니가 있는 해방촌으로 가자고 했다가,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가,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가, 그저 앞으로 가자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다 오발탄(誤發彈)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던 철호는 운전기사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들으며 혼자 생각한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참 딱하다. 하지만 우리도 철호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는 자기가 길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 않은가.

소설 속에서 단속적으로 들려오는 ‘가자’라는 외침이 지금 내 귀에도 이명증처럼 들려오는 것은 우리 모두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욕망의 쳇바퀴를 굴리느라 참된 사람의 길에서 멀어진 백성들에게 야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곤 했다. 악한 길을 버리고, 악행을 버리고,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그분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춘추전국시대의 현인인 노자는 ‘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反者道之動)이라 했다. 삶의 근본에 잇대지 않은 삶이 거두는 열매는 공허와 허무일 뿐이다. 삶의 근본, 바로 그곳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 있다. ‘너’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면서 사람이 되는 길은 없다.
김기석 목사/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