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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는 입

월요시론

독일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에 선정되었던 ‘대화’라는 책으로 유명한 리영희 교수님은 평소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애국을 하는 사람이지만 거짓에 입각한 애국은 거부하는 사람이야.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내 목숨을 통해서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진실’이야.”
진실은 무엇일까?

사람은 말을 하는 것으로 상대의 지적 수준을 판단한다. 그리고 사실 말 이외에 그것을 판단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말을 해보면 멍청한 것 같은데, 사실은 똑똑하다’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이야기를 나눠보아 멍청한 것 같은 사람은 말 그대로 멍청한 인간취급을 당한다. 그런 사람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회할 방법이 없다. 그만큼 사회인에게 일상 대화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에게 리영희 교수님이 주는 영향력은 대단했고, ‘대화’라는 책에서 그분의 사상이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났어도, 대학을 다녔더라도 지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않으면 멍청한 생각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말 역시 모자라게 해서 주위를 어이없게 만들 것이다. 말하는 방식, 대화법이란 ‘사고의 습관’이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어도 ‘말과 연설은 그 사람의 사상이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50여일이 넘도록 메르스가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1번 환자의 관리에서부터 또 의료인인 나로서도 반성할 일이 많아진다.

불신과 의혹을 자초하는 ‘무개념정부’가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정부의 실책을 덮을 수는 없다. 전염병과 자연재해를 비롯해 대규모 참사가 일어나면 공동체의 소통방식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중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보는 충분치 않거나 늦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의 교훈은 넓은 의미의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들은 조금 더 국민 곁으로 다가와야 하며, 국가는 방역체계를 전면 개편하라는 목소리를 진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허술한 국제 법 조항 몇 개, 종합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만든 힘없는 위원회, 격리병상확충과 연구 용역을 위한 얼마간의 추가예산 확충에 끝나지 말고, 초동대처 단계에서 확진검사 기준, 격리대상의 범위와 기준 등에서 혼선과 실책을 저지른 관계자들에게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3000개가 넘는 국내병원 중에서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는 곳은 불과 100여개에 불과하고, 진료 수입이 다른 진료과의 절반도 안 되는 감염내과 전문의를 병원이 선뜻 채용하지는 않겠지만,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야 하고 의료인인 우리 자신들도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사태를 이렇게 지나친다면 망각의 대가는 가혹하고, 우리가 잊으면 또 제 2, 3의 메르스는 반드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인간 생명의 3대 주적은 ‘전쟁’, ‘기근’, ‘역병’ 이다. 지금도 지구촌에는 IS 소탕을 위한 전쟁, 강원, 경상지역의 전례 없는 가뭄, 아직 끝나지 않은 역병 메르스가 진행 중이지만 살상력이 가장 높은 것은 역병이기 때문에 슬기를 모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정부가 중심을 잡고 지휘하는 체계를 다시 보여주고(이미 기대를 저버렸지만), 국가적인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서로를 탓하지 말고, 진실을 바로 보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공유하며 총력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자신과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정우 치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