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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규 회장과 함께 돌아본 ‘신흥 60년’(중)

사후품질관리 ‘두터운 신뢰’ ,내수·수출 쌍끌이 괄목성장

# 승승장구 힘은 ‘고객 최우선’ 경영철학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정글 속에서 신흥이 온갖 파고를 넘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단 하나 ‘고객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경영 철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흥은 레진치로 인해 많은 손실을 얻었지만 엑스레이기기와 유니트 체어 판매에 있어서는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했다. 특히 일본 직수입 치과기재사와의 경쟁에서는 우의를 점할 수 있었는데 이는 바로 일본수입사 제품과 차별화된 ‘고객 애프터 서비스’ 덕분이었다.

“일본의 치과기재 공급업체들은 처음 국내에 진출해 유니트 체어 등을 판매할 때는 덤핑까지 하면서 아주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막상 치과기재를 구입한 후 발생한 고장수리에 대해서는 자세가 변하기 십상이었죠.”

때론 횡포에 가까운 일본 치과기재업체들의 사후관리가 문제가 되면서 비슷한 성능에 저렴한 가격, 확실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 신흥으로 국내 고객들이 자연스레 발길을 돌리기 시작됐다.
특히 이 무렵 신흥은 소매를 거치지 않는 ‘직판형식’을 도입, 서비스와 가격면에서 우위를 선점하면서 시너지를 더했다.

# 선제적 전략으로 국산치과기재 본격 수출
1970년 중반. 정부가 외화절약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치과기재 국산화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부 치과기재품목에 대해 수입금지조치를 내리자 당시 일본 모리타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성능 좋은 유니트체어를 제조, 판매하던 신흥은 ‘훈풍’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제품 품귀현상과 가격이 폭등하는 부작용을 낳게 됐고 정부는 결국 국내 치과기자재 수입을 대폭 완화했다. 이에 신흥은 외국 제품들과의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품질개선은 물론 사후관리를 통한 서비스 강화와 더불어 수입선을 보다 다변화해 최상의 수입품을 들여오는데 힘썼다. 어찌 보면 ‘기회가 위기’로 또 ‘위기가 기회’가 되는 변화의 갈림길에서 신흥은 그때마다 선제적인 전략으로 파고를 넘었다.

또한 국내 치과의료기기의 수출을 위해 일본 모리타, 쇼후사 등과 한일합작 주식회사인 코리아덴탈을 설립, 유니트체어 등 국산 치과기자재를 생산해 본격적 해외 수출길에 나섰다.

신흥은 1978년 국내 판매 18억 원, 수출 3억5000만원의 영업실적을 올려 당시 보건사회부와 서울시로부터 공로패를 수여 받는 등 수출기업으로의 도약기를 맞았다.

# 직원 복지·교육 앞장 회사 성장 원동력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고 고객들에게 보다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원들의 복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규 회장은 회사가 성장 발전하면서 그 원동력이 된 직원들의 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인천 부평공장 인근에 주택을 지어 20년 상환조건으로 직원들을 입주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후 꾸준히 사택 보급률을 높여갔다.

또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임직원 모두가 자기계발에 힘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직원들의 자질이 향상되면 제품의 품질도 향상될 것이고 이는 곧바로 고객에 대한 사후관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 지방사무소 설치·공장 증설 등 공격 마케팅
1981년 신흥치과산업주식회사는 법인명을 ‘주식회사 신흥’으로 바꿔 국내 대표적인 치과의료기기회사로서 전문기업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또한 사내조직과 기구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다시 한 번 심기일전을 다졌다.

당시 30여개 해외 유명사들과의 거래를 통해 총 2000여종의 치과기자재를 판매하는 직원 650명을 거느린 중소기업으로 성장한 신흥은 지방영업 및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부산, 대구 등에 5개 지방사무소를 설치했다. 또 유니트 체어 등 국산치과기재 생산을 위해 인천부평공장의 설비확충과 더불어 마케팅시스템을 강화했다.

특히 이시기 영업 전략을 판매 우선 정책에서 ‘사후관리 강화 시스템’으로 변경, 사후관리만을 전담하는 신흥기계정비를 설립하기도 했다.

“사후품질 관리야 말로 내수시장은 물론 해외 수출시장까지 석권하는 가장 든든한 토대라고 확신했습니다.”

신흥은 해외 시장에 자사제품의 품질력을 알리기 위해 해외전시회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1990년 기업공개 이후 1992년 매출 200억 원 돌파, 1997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매출 535억 원 달성, 1999년 매출 654억 원 달성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내며 괄목할 만한 신장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