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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중국은

월요시론

15년 전 미국연수 때 필자가 일하던 실험실에는 중국대륙에서 온 연구원들이 많았다. 당시 중국 의과대학에서 성적 좋은 졸업생들은 대개 임상보다 기초전공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였다. 기초전공을 해야 미국 내 실험실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실험실의 차이빈이란 친구가 그랬다. 그는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녔으며, 점심은 오후 3시쯤 느지막이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중국에서 온 연구원들은 너나없이 다 가난해 보였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나라가 IMF 경제위기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여유롭고 때깔도 좋았다. 중국을 세계 최빈국의 하나라고 소개한 책들은 도서관과 서점에 널려 있었다. 중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가장 오랜 문명국가였고 우리가 수백 년간 종주국으로 섬겨온 중국이 아닌가.

귀국 후 나는 현대중국의 수수께끼 같은 쇠락을 풀어줄 두 권의 책을 만났다. 미국 닉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On China)’와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대항해시대’이다. 이른바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걷어낸 주역인 키신저의 책은 중국을 이해하려는 서양인들의 필독서가 되어 있고, 주 교수의 역작은 유럽 중심의 근대 세계사를 해양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두 책 모두 500쪽이 넘는, 역사해석의 문외한이 읽어내기에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지만, 이를 통해 나름대로 중국을 이해하는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명(明)시대 정화의 남해원정과 갑작스런 해금(海禁)정책, 그리고 유럽의 산업혁명과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그것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100년쯤 앞서 명의 환관 정화는 영락황제의 명을 받아 남해원정에 나섰다. 당시로선 세상에서 가장 컸을 보선(寶船)을 비롯한 대소선 160여척과 2만7000명을 동원한 대규모 선단이었다. 정화는 30여 년간 전후 7차례에 걸쳐 인도와 아라비아를 거쳐 아프리카 케냐에 이르는 해상을 누비며 중국의 위용을 떨쳤다. 지금으로 치면 14조원이나 들여 건조한다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의 위용을 방불케 했을 것이니, 그 앞에 어느 왕인들 꼿꼿이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락제 사후 돛이 두 개 이상인 선박을 불법화하고 먼 바다 출항을 금지하는 해금, 즉 쇄국령이 내려졌다. 돌연한 정책변경으로 정화의 영광은 신기루가 되고, 이후 해상주도권은 유럽에 넘어가고 말았다.

19세기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한 유럽 열강의 출현, 그리고 이를 재빨리 보고 배운 일본의 부상은 중국에게 정말 ‘서양의 충격(Western Impact)’이었다. 지대물박(地大物博)의 완전체였던 중국대륙을 피자판 잘라먹듯 달려드는 열강 앞에 청은 너무도 무기력하였다. 100여년의 외세침탈을 극복한 마오쩌둥의 사회주의혁명은 이제 나라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듯 보였다. 그러나 15년 만에 누구도 영문을 모른 채 시작된 문화혁명 10년의 대혼란은 신생 중국의 시계바늘을 가혹하게 돌려놓았다.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을 보고 내달릴 때 중국은 더 빠른 속도로 뒷걸음쳤다. 한중 두 나라 역전의 비밀은 바로 문화대혁명 10년의 결과가 아닐까.

필자가 미국에서 품었던 의문의 해답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였던 만큼 이제 현재가 달라졌으니 해석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지난 20여년 사이 중국은 다시 세계중심을 향해 성큼 다가서고 있다. 지금은 명목GDP 세계 2위이지만 일대일로(一帶一路)라 일컫는 해상-육상 신 실크로드를 내세워 세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게 중국의 야망이다. 비록 요 며칠 사이에 중국 증시가 요동치고는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2026년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그 지위를 적어도 2050년까지는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요우커들로 북적이던 명동과 북촌 한옥마을이 돌연 적막해졌다. 양 손에 가득 명품 쇼핑백을 든 중국인 관광객의 발을 묶은 것은 애꿎은 메르스 여파이지만, 정작 나라 전체가 한산할 만큼 그들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중국이 우리 일상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의 크기를 웅변해준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필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사이 중국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또 우리는? 새로운 궁금증을 풀어줄 훌륭한 책을 이번에도 만날 수 있을지 모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 영 서울치대 치주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