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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르텔을 깬 사람

종교칼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길거리를 떠돌며 살고 있는 이들을 식탁에 초대하고,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깊은 위로를 받는다. 높은 권위의 보좌를 버리고 평범한 사람들 곁에 다가서는 그의 태도는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들에게 온유하고 따뜻한 모습으로만 자기를 각인시키려 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를 뒤덮고 있는 불의와 어둠에 대해서 그는 조금의 유보도 없이 직정적으로 비판을 가한다. 최근 토리노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던 그는 무기를 만들거나 무기 산업에 투자하면서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평화를 위하여 일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진짜 관심은 돈벌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지만 그렇게 기탄없이 말하기는 어렵다. 좌고우면하느라 마땅히 해야 할 말도 못하며 사는 내게는 경이롭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는 두루뭉수리로 말하거나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누군가의 삶 혹은 삶의 자세를 뒤흔들거나 타격하여 충격을 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예언자이다.

작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피아 조직인 ‘은드란게타’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남부 도시 칼라브리아에서 마피아 집단처럼 악을 숭배하고 공동의 이익을 경시하는 이들을 향해 당신들은 파문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그 말로 인해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어둠을 어둠으로, 빛을 빛으로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다. 알베르 카뮈는 ‘계엄령’이라는 희곡에서 페스트로 인해 모든 이들이 공포에 사로잡힌 한 도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의인화된 ‘페스트’를 돕는 여비서는 주인공인 디에고에게 모든 이들을 죽음의 공포 속에 몰아넣는 자기들의 체계에 한 가지 결함이 있다고 실토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사람의 인간이 공포를 극복하고 반항하기만 해도 기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공포를 빚는 기계가 완전히 멈춰버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삐걱거리게 만들 수는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희망일 것이다. 그 강고한 기계를 흔들어 삐걱거리게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역사의 봄을 선구하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시대의 추문인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 세계적으로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 채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 난민이 무려 6000 만명에 이른다 한다. 난민들의 삶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공동체의 지원없이 각자도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교황은 전쟁과 부당함과 기근을 피해 도망친 이주민들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역시 난민 문제가 야기하는 어려움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는 경쟁을 과열시키지만 이민자들은 불평등과 소비 지상주의, 전쟁의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성경은 사회적 약자들의 살 권리를 세심하게 회복시켜 주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시종일관 가르친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경에 투철한 신앙인이다.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범한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찬양하라”라는 제목의 회칙을 발표했다. 이 회칙에서 그는 인간의 탐욕과 자기 파괴적 기술이 우리의 자매이자 어머니인 지구를 위험한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고 명료하게 선언했다.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석유재벌의 후원을 얻고 있는 정치인들은 즉각 교황은 종교인 본연의 직무에나 충실하라고 비꼬듯 말했다. 그들은 세계를 아름답게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맡겨진 본연의 책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를 종교가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직무유기가 아니겠는가? 뻔히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자기에게 주어진 영향력을 십분 활용함으로써 고장난 세상을 고치려 애쓰는 것, 그리고 모든 이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온전히 누리는 세상을 열기 위해 고심하고 고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신께 바치는 최고의 예배가 아닐까?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