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우리집에 가을이 왔어요

종교칼럼

요즘 제가 사는 집에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이는 토끼입니다. 털색이 가을빛이어서 붙여준 이름이지요. 올해 초, 공원 테니스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작년쯤부터 공원에 나타난 몇 마리 토끼들로 인해 공원 가는 즐거움이 무량했습니다. 가을이의 엄마는 유독 저를 따랐습니다. 그런 엄마가 4월 어느날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 지날때마다 함께 지내던 토끼들도 한 마리씩 없어지고 급기야 그 어린 가을이만 달랑 남았습니다. 그들을 보는 기쁨에 공원을 즐겨찾던 누구도 행방을 아는 이 없었습니다. 공원에 돌아다니는 오소리나 너구리의 소행일 거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가을이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어린 가을이는 밤이면 테니스장 밖으로 나왔다가 사람들을 보면 겁에 질려 재빠르게 도망쳤습니다. 먹이를 주며 다가가도 경계하느라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가을이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공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진심으로 마음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를 잃고 얼마나 슬프고 두렵고 막막할 것인지를 읽어주었습니다. 몇일간 홀로 용감하게 살아남아준 것을 칭찬하고 격려했고 앞으로 잘 보살펴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런 연후에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그대로 앉은 채 제 손에 몸을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단 몇분만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형언할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다음날도 가을이는 저를 알아보았고, 다른 사람들이 다가가면 기겁하고 도망쳤습니다. 

목숨을 안보할수 없는 처지에 놓인 가을이를 그대로 둘 수 없어 급기야 한식구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상자 속에 넣어 올 생각으로 그를 아끼시는 아주머니 한분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 두사람은 그 작은 토끼 한마리를 놓고 한시간 동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도무지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도 지친데다, 겁에 질려 도망다니는 아기토끼도 안쓰러워 다음날로 미루고 아주머니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몇분만에 다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토록 겁먹고 잽싸게 도망치던 가을이가, 제가 조심조심 다가가 다시 마음대화를 시작하자 그대로 앉은채 또 제 손을 받아주었습니다. 두손을 뻗어 자기를 들어올려도 거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곳에 온 가을이는 좌선을 하고 있는 제 옆에 가만히 앉아있곤 합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책상 아래에서 저를 향해 납작 엎드린 채 고요히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 시선이 느껴지면 기분 좋아 트위스트하며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배를 드러내며 벌러덩 눕습니다. 기특하게도 가을이는 스스로 화장실을 가릴줄 압니다. 화장실용으로 놓아둔 바구니에 폴짝 뛰어들어가 일을 본 후 끝나면 다시 폴짝 뛰어 나옵니다.

우리집에 가을이 오니 행복과 웃음이 넘칩니다. 그는 동물과의 교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증명해주는 소중한 부처님입니다.
모든 존재는 언어이전의 의사소통이 있습니다. 마음이 내는 소리입니다. 기운으로 소통하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가 진짜 언어입니다. 모든 존재가 언어이전의 언어로 소통하는 시대가 오면 참 좋겠습니다.

장오성 교무 원불교 송도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