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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화의 욕망을 거슬러

종교칼럼

요즘은 틈이 날 때마다 집 근처에 생긴 공원을 산책하는 게 낙 가운데 하나이다. 이름하여 경의선숲길이다. 경의선이 지하화되면서 철길 부지에 공원이 조성된 것이다. 길이는 길고 폭은 좁다.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니 공원화 사업이 완료되면 도심 속에서 제법 괜찮은 산책로가 하나 생기게 된다. 흰말채나무, 물푸레, 칠엽수, 이팝나무, 양버즘, 양버들, 야광나무, 덜꿩나무, 가죽나무, 뽕나무, 모감주, 남천 등의 나무와 병꽃, 수호초, 은쑥, 갯쑥부쟁이, 줄사철 등의 키작은 풀꽃들과 눈맞춤하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다.

저녁이 되면 인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공원에 나와 산책을 한다. 유모차에 탄 아기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아빠를 앞질러 재우쳐 달리다가 자랑스럽게 되돌아오곤 하는 아이들, 운동 삼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사람들, 급할 게 뭐 있느냐는 듯이 천천히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심지어는 토끼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있다. 공놀이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도 보인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이런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살 수밖에 없는 도시에서의 삶은 힘겹고 각박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 일찍 공원에 나와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술병,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 한구석에 얌전하게 모아놓은 빈 과자봉지 때문이다. 굳이 교양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남루한 영혼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들이 지켜지지 않을 때 서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과도한 의미 부여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공간을 사적으로 전유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애정행각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다른 이들의 마음에 일고 있는 불쾌감 따위는 오불관언이다.

성경에 의하면 신은 에덴동산을 조성하신 후 사람을 만들어 그곳에 살게 하셨다. 에덴동산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낙원에 대한 원형적인 이미지의 구현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생명이 조화로움 속에 머물렀다. 고요하고 느긋한 평화가 깃든 곳이었다. 그 동산의 한복판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서 있었다고 한다. 신은 인간이 동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안 된다고 일렀다. 아담과 하와는 별다른 불편없이, 위반에 대한 욕구조차 없이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제한된 행복은 뱀이 개입하면서 무너졌다. 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너희도 신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그 나무를 따먹었다. 과연 뱀이 말한대로 그들의 눈이 열렸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신적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은 타자의 눈으로 자기를 볼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선악과 이야기를 도덕적 주체의 탄생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신학자들은 신이 설정한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죄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동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제1세대 민중신학자인 안병무 박사는 이 이야기를 ‘공의 사유화’라는 말로 요약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동산에 있던 모든 피조물에게 속한 것인데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사유화했다는 것이다. 죄는 사유화의 욕망에서 빚어진다는 것이다. 에덴 이후의 사람들은 끝없이 사유화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숙명처럼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존재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세상의 존재자들에 집착한다. 불안이 가중될수록 사유화의 욕망은 더욱 강화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다움이란 사유화의 욕망을 거슬러 공공의 것을 공공의 것으로 남겨두는 데 있다. 공원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방치하거나 투기하는 일은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기본부터 다시 세워나가야 할 때이다.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