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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무르익기를

종교칼럼

처서 절기를 지나면서 마음 급한 벚나무잎이 벌써 누렇게 물들고 있다. 바람의 결도 다르고 살갗에 와닿는 햇빛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 시인 문성해가 “내 머리에 바늘구멍 뚫는 소리/빽빽하게 들어찬 실뭉치들 들쑤시다/꼭꼭 숨은 실 끝 하나 찾아 들어올리는 소리”라고 노래하던 매미 소리도 이제는 잦아들고 있다.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며 물러가는 여름에게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다만 왜 사람들은 ‘봄날은 간다’ 류의 유장한 노래를 지으면서도 ‘여름날은 간다’는 노래는 지어 부르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

낙화착실종추성(落花着實終秋成)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화려한 꽃시절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꽃진 자리에 맺히는 열매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가을은 열매와 더불어 온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는 이들이 있다. 꽃처럼 피어나는 봄날, 무장 무장 생명이 자라나는 여름날, 생명의 기운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내면의 빛을 드러내는 가을날, 허장성세를 다 떨치고 자기의 본질로만 살아가야 하는 겨울날. 어느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히브리의 지혜자인 ‘코헬렛’은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전3:11)고 말했다. 아름다운 삶이란 자기 때에 맞는 삶을 옹골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지나간 인생의 때를 그리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인생의 때를 동경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함석헌 선생은 자신의 씨알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복숭아라는 메타퍼를 사용한다. 붉은 기운을 머금은 노란 복숭아는 그야말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 사람들은 일단 복숭아의 그 겉껍질에 매혹당한다. 사람의 외모, 개성, 매력, 집안, 스펙 등이 복숭아의 겉껍질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는 하지만 인간관계를 지속시키도록 하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복숭아 살이다. 그것은 한 존재의 품격이나 다른 이들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부드럽고 향기롭고 달콤하다 하여 살을 아끼면 결국 복숭아 살은 썩고 만다. 사람은 타자에게 기꺼이 자기 마음을 줄 때 아름다워진다. 우정은 그렇게 발생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겉껍질도 살도 아닌 씨이다. 씨는 딱딱하여 씹을 수도 없고 향이 없어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 씨야말로 복숭아라는 개체의 소멸을 막아준다. 함석헌 선생은 복숭아 씨를 일러 ‘도인(桃仁)’이라 했다. 물론 이것은 한방에서도 사용하는 말이지만 함선생은 씨를 뜻하는 ‘어질 인(仁)’자에 주목한다. 어짊이 모든 생명의 핵심이라는 뜻일까?

모름지기 교육은 그 씨를 키우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껍질이 벗겨져도, 살이 물크러져도, 썩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하나의 중심이 있다면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젊은이들을 본다. 스펙도 좋고 품성도 좋은 데 이 덧거친 세상을 담박하게 살아낼 내적 힘이 딸리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자괴감 때문에 울고, 자기 앞에서 매정하게 닫힌 기회의 문 때문에 운다. 옛 사람들은 참 사람됨의 길을 가리 위해서는 구사구용(九思九容)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구사는 보는 것, 듣는 것, 낯빛, 몸가짐, 어른 섬김을 어떻게 해야 할지와 의심, 분노, 이익의 문제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를 가르친다. 구용은 가지런해야 할 몸가짐 아홉 가지를 가르친다. 발걸음은 진중하게, 손은 공손하게, 눈빛은 단정하게 할 것이며, 입은 다물고, 목소리는 고요하게 하고, 머리는 곧게 들어야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몸가짐을 엄숙하게 하고, 서 있는 모습은 덕스러워야 하고, 표정은 씩씩하고 발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른 존재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옛 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서 어긋남이 없도록 삼가는 것을 일러 신독(愼獨)이라 했다. 홀로 있을 때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있는 자리에서는 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시선을 늘 의식하며 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앞에 현전하여 있는 타인을 마치 투명인간인양 취급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질 인(仁)’은 ‘사람 인’과 ‘두 이’ 자가 결합된 말이다. 어짊은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가치이다. 우리 인격의 핵심이고, 우리 존재의 썩지 않는 중심인 어짊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너’를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 볕 좋은 날에 우리 존재가 아름답게 무르익기를 바랄 뿐이다.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