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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움’ 이데올로기

종교칼럼

한문수업 시간에 제일 쉽게 외운 문장이 있다.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공자님 말씀이다. 뜻도 쉽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父母)는 부모답게 자식(子息)은 자식답게 하라.” 앞글자는 역할이나 신분을 나타내고, 뒷글자는 ‘답게 하다’라고 풀이된다. 야, 참 쉽고도 좋은 말씀이로구나 하고 감탄했던 이 문장이 지금은 그 반대다.

내가 어떻게 나 아닌 다른것 다울 수가 있을까. ‘~답게’ 살라는 것이 대체 뭐란 말인가. 임금다운 임금은 어떤 임금이며, 신하다운 신하는 어떠하며, 부모다운 부모는 어떠해야 한다는 걸까? 한번 물어보라. 임금다운 임금이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부모답게 산다고 생각되는 부모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없다! 정확히 ~다운 것에 적합한 사람은 없다. 똑같은 논리로 남자답다, 아내답다, 남편답다, 어른답다, 아랫사람답다…이런 식으로 대입하고 ~답게 사는 사람이 있느냐 물어보라. 누구도 ~다움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움’이란 사실 실체가 없는 허구다. 내가 아닌, 다른것 답게 살라는, 실체도 없는 이 주문은 자책과 우울함을 낳고, ~답지 못한 상대를 비난하게 만들면서 심각한 갈등을 불러온다. 남자답고, 여자답고, 아버지답고, 어머니답고, 큰아들답고, 며느리답고, 선생답고, 학생답고, 지도자답고, 직원답고… 그런 요구들을 주고받으며 일상속에서 개인이나 사회나 무형의 올가미에 묶여 산다. ‘나는 왜 그러하지 못하지?’ ‘나는 자격도 없는 OO야’ 하고 스스로 상처낸다. 상대를 향한 날선 비난들, 온갖 종류의 따돌림들도 바로 이런 ~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향해 가해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다움이라는 이념이 파워를 형성하여 사람을 옥죄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다른것 다움이 많을수록 고독과 체면과 위선도 많아진다. ~다움을 많이 설정하고 강하게 추구할수록,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 자유로움에서는 멀어진다. 

보라. 저 숱한 나무들은, 꽃들은 나무다우려고 하지 않고 꽃다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온전히 나무답고 꽃답다. 사슴은 사슴다우려고 하지 않아도 정확히 사슴답다. 사람도 그러해야 한다. 무엇 다우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답게, 각각의 존재가 낱낱이 가장 자기답게 살면 된다! 상대방도 또한 그러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믿어주면 된다. 아이같은 어른이 있고 어른같은 아이도 있으며 남자같은 여자도 있고 여자같은 남자도 있으며, 주인같은 객도 있고 객같은 주인도 있고 그런게지! 그냥 그답게 살도록 놓아주고 어느 다움을 더 찬양하지 않을때 모든 사람은 저절로 자기답고, 서로에게 기여하면서 살수 있다. 다른것 다움을 넘어서서 살아야 가장 자기다움이 드러나고, 다른 존재들을 그대로 위대하게 받아들이며 평화롭게 살수 있다.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격이긴 하지만, 내가 공자님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 안의 참나를 드러내며, 상대방도 모두 그러하도록 믿어주면서 살면 참 잘 사는 것이지!“ 아, 이건 너무 노자스러운가? 그래. 어쩌면 때론 공자스러움을 벗어나야 개인도 사회도 건강해질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오성 교무/원불교 송도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