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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의 고된 하루

■창간특집-특별기고 | 치과의사 건강관리 및 실천 방안

하루의 대부분을 치과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들의 진료실에서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9시에 출근하면 맨 먼저 예약환자 명단을 들여다보고 오늘 환자진료와 관련해 스탭들과 간단한 회의를 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니 10시.

진료실에 들어가기 직전, 엊그제 경영세미나에서 배운대로 거울 속 나의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연습을 한 후에야 비로소 진료실로 들어가게 된다.

유니트체어에 앉아서 기다리는 환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마스크를 쓰고 스툴에 앉는다. 오늘따라 손에 물기가 있는지 글러브가 좀 빡빡하다. 반복해서 손바닥을 몇 번 벌려주니 글러브가 제자리를 잡을 때쯤 치과위생사가 조명등을 켜준다.

이미 내 왼손에는 미러가 들려 있고, 핸드피스에 물이 나오나 테스트 삼아 페달을 몇 번 밟아 보고 구강내 진입을 하는데, 동시에 자리 다툼하듯 들어오는 치과위생사의 석션팁에 시야가 가려지니 내 의자를 약간 이동해 자연스러운 진료자세를 잡아본다.

이제 조명에 그림자가 생기면서 직립자세 진료가 힘들어진다.

에이! 모르겠다. 최대한 구강에 근접한 곳으로 내 눈을 가져다 놓으니 허리가 틀어지고 목이 틀어진다. 한 두해도 아니고 20여년을 같은 자세로 진료하니 이제는 직립자세보다 구부린 자세가 훨씬 편하다. 힘차게 페달을 밟으니 뿌옇게 분사되며 피어오르는 물보라가 안개처럼 피어 오른다. 이 물보라에는 무엇이 섞여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이제 큰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그냥 물이려니 하고 진료를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수십번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직원들이 기구 정리를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

직원들에게 퇴근시간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환자를 서둘러 정리하고 원장실로 향한다.
수부에서 정리된 일계표와 현금, 카드전표를 받아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퇴근해서 내 갈 길을 떠난다.

이것이 치과의사의 하루이다.

오늘 진료실 내에서 일어났던 일을 치과의사 건강의 관점에서 일부만 복기 해보겠다.

1. 유니트체어는 환자 편의인가? 치과의사 편의인가? 환자에 맞춰 안락하게 디자인된 것으로 다양한 치과의사의 체형이 배려되지 않은 기계에 인간이 맞춰야 하는 역전현상이 진료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잘 선택해야 한다.

2. 마스크를 입만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 않았는가? 마스크의 여과효율을 염두에 두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보인다. 조금이라도 고효율의 마스크를 구입하고 정확한 착용법과 관리법을 숙지하여야 하는 가장 기본 개인보호장구인 마스크가 치과진료실내 공기오염에 대해 제대로 된 방어를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3. 글러브가 쪼여 손가락이 꺾인 상태로, 치과의사의 손은 하루 종일 장갑속에서 가뿐 숨을 내쉬고 있다. 더불어 라텍스나 파우더 알러지로 빨갛게 꽃이 핀 손등에는 가려움증과 주부습진이 생겼지만 그 위에 또다시 글러브를 끼는 것이 치과의사이다.

4. 좁은 구강 내에서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는 서로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툰다. 서로에게 배려를 하려면 둘 중의 한 명이 몸을 뒤틀고 고정된 자세로 한참 동안을 유지시켜야 한다. 반복되다보면 근육이 늘어나고 관절이 뒤틀리면서 만성 근육골격계 질환으로 대부분 이행을 하지만 치과의사의 숙명이라는 위안으로 잠깐의 휴식으로 고단한 몸을 달래며 지내는 것이 전부다.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는 치과의사의 직업병이라고 너무 쉽게들 얘기하지만, 직업병에 대한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5. 핸드피스를 잡은 손은 어떤가? 핸드피스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핸드피스 튜빙의 반발력까지 흡수해야 하는 손목의 혹사는 실로 대단하다. 손목뼈 속 신경이 눌리는 것까지도 감내하고 버티며 국민들의 구강보건업을 영위하는 사람이 치과의사들이다.

6. 환자에 충전되어 있는 아말감을 제거할 때 발생하는 분진과 증기수은의 비말은 진료실내 환경으로는 최악이지만 이마저도 불감증을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왜냐하면 아말감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가체계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나의 진료실에서 벌어졌던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치과의사로서 순응하며 받아들이려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치과의사의 삶의 질, 건강의 질은 기본적인 평가조차 받지 못한 채 치과의사 혼자 감내하다 시름시름 앓으며 하나 둘씩 치과계를 떠나가는 선배들을 직접 목격하고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치과계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육체적 고난 뿐인가?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많은 결정과 판단을 하면서 속앓이를 하며 지내야하는 일이 많은데, 버거운 심리적 하중을 혼자서 짊어지는 치과의사들의 건강위험도는 이미 적색신호로 표현하기 조차 힘듦을 알고 있다.

통계청을 뒤져봐도 논문을 뒤져봐도 치과의사의 건강과 수명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하는데에는 치과의사인 우리 스스로가 무관심하고 깊숙한 곳에 처박아 놓지는 않았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치과진료비를 얘기하고 치과의사의 사회적 기여도를 얘기할 때, 똑 떨어지는 객관적 자료의 준비없이 고리타분하게 불경기 탓이나 하며 전개하는 주먹구구식 원가계산법으로는 국민과 정부를 절대로 설득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아프면 아픈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있는 그대로 치과의사의 삶을 외부에 알려야 하고 이에 대한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 낼 객관적인 설득의 도구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과의사의 이미지 제고가 될 것이다.

치과의사의 생명표가 만들어지고, 환자를 위한 유니트체어가 아닌 치과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한 치과기자재가 디자인되어지며,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의 안전을 고려한 치과인테리어가 우선되어지는 이기적 제안들이 앞으로는 많이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동안 꼭 필요했지만 무심코 흘려보내야만 했던 치과의사의 건강과 질병, 수명문제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치과계를 이끄는 우리가 미래를 책임질 치과의사 후배들에게 남겨줄 가장 큰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치원 공보이사
조선치대/서울대 보건대학원 졸업
‘치과인의 건강’(군자출판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