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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종교칼럼

복면가왕. 노래를 잘 못하는 나도 저렇게 하면 남들 앞에서 노래를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프로그램이다. 매회마다 출연자들은 가지각색의 복면을 하고 그에 걸맞는 이름을 달고 정체를 완벽히 숨긴 채 노래한다. 복면을 하고 노래할 때 그들은 본연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고, 그 속에서 느낀 혼자만의 감격에 겨워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곤 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가장함으로써 가장 자기다움을 회복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복면가왕이 노래하는 자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인지함으로써 평상시에는 잊고 살던, ‘가면 안에 있는 진짜의 자신’에 오롯하게 집중하는 체험을 하는 까닭이리라. 게다가 청중평가단이나 연예인 패널이나 시청자들이 복면 안의 가수, 즉 ‘진짜 나’에게로 향하는 바로 그 ‘깊은 관심’ 때문이리라. 어떤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은 자유와 기쁨을 주고, 그것을 받지 못한 자리에는 우울한 고독이 들어선다.  

놀라운 것은, 우리 모두 이미 가면을 쓴 채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잊는다는 사실이다. 복면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하는 자’는 정확히 말해 누구인가? 그의 몸이, 거기에 붙여진 아무개라는 이름이 노래할수 없다. 육체도 이름도 복면의 하나일뿐 그것 자체가 노래할수 없다. ‘로보트 태권브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 가면을 온 몸에 뒤집어쓰듯이, ‘몸’이라는 가면에 ‘아무개’라는 이름을 일찌감치 붙여놓고 그것을 쓴 채 그 안의 누군가가 있어서 살아가고 그 누군가가 노래한다. 그 안에서 노래하는 자는 따로 있다. 그게 정말 나다. 그 노래하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기뻐하고 감동하는, 그 보여지지 않는자, 그가 정확한 나다. 복면도 육체도 다 ‘가면’이고 이것만이 ‘진면’이다. 

육체는 일반 가면에 비해 착용기간이 길어진 가면이다. 육체라는 가면은 대략 평균 80여년을 착용한다. 육체라는 가면도 제작과 변화가 가능해서 착용기간이 지나면 ‘나’는 다른 가면으로 바꿔 입곤 한다. 제아무리 가면이 바뀌어도 그 속에서 생각하는 힘, ‘보여지지 않는 나’는 죽지 않는다. 진면은 늘 그대로 있고 가면은 끝없이 변화한다.

가면인 육체나 그것을 감싸는 의상이나 그에 붙는 조건들만 돌보느라, 그 안의 ‘진짜 나’를 외면하고 소외시키고 방치해놓기 때문에 우리는 어쩐지 삶이 힘들고 우울하다고 느낀다.  가면을 위해 일평생을 얼마나 에너지를 소진하고 사는지 모른다. 가면에 명품으로 멋을 부리고 화장하고 가면을 뜯어고쳐 성형하고 더 높고 힘있게 보이려 온갖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러는 사이에 진짜 나는 철저히 소외된다. 현대인이 겪는 마음병은 다 여기서 생긴다. 그 속의 나를 깊은 관심으로 돌아볼 때 소외에서 생기는 병은 사라진다. 몸도 이름도 다 가면임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그때 비로소 가면이 힘을 잃고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올해도 참 열심히들 달려왔다. 한해의 끝에 서서, 세월에 구애없이 존재하는 그 ‘진짜  나’를 찾는 것은 비할 바 없이 값진 일이다.

장오성 교무/원불교 송도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