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4 (화)

  • -동두천 26.7℃
  • -강릉 22.9℃
  • 서울 26.1℃
  • 대전 24.3℃
  • 대구 25.4℃
  • 울산 26.2℃
  • 박무광주 29.2℃
  • 구름많음부산 29.5℃
  • -고창 26.8℃
  • 흐림제주 33.6℃
  • -강화 25.4℃
  • -보은 21.9℃
  • -금산 25.8℃
  • -강진군 30.1℃
  • -경주시 24.9℃
  • -거제 29.9℃
치의신보 PDF 보기

2015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기록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 속으로 흘러가버린, 그러나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속에 무늬처럼 남겨진 자취들을 채집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세컨드핸드 타임’은 소비에트 시절을 거쳐온 이들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준다. 작가는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을 호모 소비에티쿠스라고 명명하면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던 열정은 무엇이었고 그 열정이 사라진 후에 도래한 삶의 실상은 무엇이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스베틀라나는 소설의 들머리 격인 ‘어느 가담자의 수기’에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고 말한다. “아버지들은 자유란 공포가 부재할 때를 말하며, 쿠데타 세력을 제압했던 8월 중의 3일이 그 자유에 해당한다고 대답했다. 또 식료품 가게에서 백 가지 종류의 햄 중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열 가지 햄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사람보다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했다. 얻어맞지 않고 사는 것이 자유지만 얻어맞지 않고 사는 세대는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세컨드핸드 타임>, 김하은 옮김, 이야기가 있는집, 2016년 1월 20일, p.15). 공포와 억압과 빈곤을 견뎌온 이들의 자유는 이처럼 처연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삶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자녀들은 자유란 사랑이며 내적 자유는 절대적 가치라고 했다. 자유란 스스로가 자신의 소원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라고도 말했다. 또한 자유란 돈을 많이 갖는 것이며,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자유란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살아갈 때를 말하는 것이고, 자유란 정상적인 것이라고 했다.”(앞의 책, p.16)

자녀 세대에게 자유는 공포의 빛깔과 무관하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수용소도, 비밀경찰도, 전쟁의 공포도 없다. 내적 자유가 소중히 여겨지고, 돈이 자유의 전제조건으로 부상한다. 자유는 물고기에게 물이 그러하듯 정상적인 생의 조건일 뿐 쟁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자유’라는 동일한 단어가 세대에 따라,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이리도 달리 이해될 수 있다. 소통을 위한 기호로서의 언어는 사용하는 이들이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뉘앙스를 지닌다.

말은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그러나 그 말이 오히려 사람들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제집을 잃고 떠도는 말들은 소음이 되어 우리 귀를 어지럽힌다. 귀만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체계를 교란하여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말을 능숙하게 부리는 이들은 타자들의 인식과 가치관에 개입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의지를 수행하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타락한 말이 진실의 옷을 입고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

시인 김수우도 말에 멀미를 했던 모양이다. 시인들은 어쩌면 타자의 가슴에까지 가닿지 못하는 말에 가장 깊이 상심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오해되고, 왜곡되고, 이용당하기 쉽다 하여 말을 아예 안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막을 그리워한다. 사막은 소문이 자라지 않는 곳이다. 사막에서 자라는 바오밥나무는 말에 지친 시인에게 말 없이 말을 건넨다. 시인은 직관을 통해 뿌리가 몸통의 두 배인 바오밥나무의 말을 듣는다. “하늘을 본다는 건/제 넓이 두 배의 침묵 위에 서는 일,/제 키 두 배의 고요를 키우는 일임을 알아/바오밥은 바람이 먼데서 실어온 말까지/그냥, 삼킵니다, 깊은 데로,/깊은 데로 발목만 길어집니다”(<뿌리> 중에서).

침묵과 고요함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말은 늘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내곤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정치권에서 쏟아져나오는 말들, 종교인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발설되는 말들, 사회적 약자들의 신음소리를 압도하는 새된 소리들이 세상을 혼돈으로 되돌리고 있다. 타락한 말이 횡행할 때 진실한 말은 자취를 감춘다. 아니, 들리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말하기 전에 세 황금문을 지나게 하라고 권한다. ‘그 말은 진실한 말인가?’ ‘그 말은 꼭 필요한 말인가?’ ‘그 말은 친절한 말인가?’ 노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은 모른다”(知者不言 言者不知)고 했다. 진실한 말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때이다.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

관련태그

23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