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시대 변해도 전공의 선발 등 차별 존재

본지·대여치 공동기획-대한민국에서 여성 치의로 살아간다는 것

이제 대한민국 치의학계에서 양성평등이란 말은 이미 ‘흘러간 옛 유행가’가 되어 버린 듯하다. 최근 10년 간 치과의사 국가고시 수석자 10명 중 7명이 여성일만큼 알파걸들의 약진은 남성을 압도하고 있으며, 의료인 3개 단체 중 여성 비중이 가장 높을 정도(26.4%)로 수적인 열세 또한 다소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드의 말은 다르다. 여전히 “곳곳에 보이지 않는, 제법 두꺼운 유리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치의신보와 대한여자치과의사회(회장 이지나)는 공동으로 ‘대한민국에서 여성 치과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대한민국 치의학계가 노정하고 있는 ‘젠더(Gender)’의 문제를 다뤄보고, 대안까지 모색해 보는 기획시리즈를 보도한다<편집자 주>.


연재 순서 
  자부심 높던 20대, 치대서 첫 유리장벽과 만나다
  ‘진료, 가사, 육아’ 전부 해내는 슈퍼우먼의 비애
  중년 여치의 삶 ‘자신을 찾는 일부터’
   좌담회 ‘대한민국에서 여성 치의로 살아간다는 것’

보수적·남성중심 분위기·성희롱 문제 여전

“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여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었어요. 아마 한두 명 꼽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공부를 잘한들 전공의나 교수가 가당키나 한 말이겠어요? 참 여자 치과의사로서 생활을 감내하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견디고, 또 견뎠지요.” (60대 A원장)

“아직도 몇 개 전문과 빼고는 여학생들이 갈 곳도 없고, 여학생들을 잘 받지도 않으니 여 학우들은 예쁜 얼굴과 애교로 교수님께 어필하는 게 더 낫다는 게 선배님들이 가끔 하는 충고예요.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황당했는데 이제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좀 가기 시작합니다.” (20대 초반의 B씨)

A원장과 치과대학생 B씨 사이에는 40년이 넘는 세월의 간극이 있다. 이 사이에 우리는 얼마나 변화한 걸까?

# 결혼, 출산 않겠다는 각서 쓰던 시절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여성 치과의사의 비율은 전체의 26.4%. 치과의사 열 명 중 세 명에 가까운 인원이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많은 약사 직군(64.3%)을 논외로 두고, 의사 직군(24.4%)과 한의사 직군(19.5%)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기록하고 있다.

증가 추이도 가파르다. 1980년 395명으로 전체 치과의사 3620명의 10.9%에서 2000년 3745명(20.7%)으로 약 10배가 늘었다가 2014년 현재 7424명(26.4%)으로 약 25년 동안 20배 가량 증가했다. 숫자가 늘어난 만큼 걸맞게 권익이 상승하거나 차별요소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이 치과대학에 입학하고 가장 먼저 명징하게 겪는 차별요소는 전공의 선발 지점에서 불거진다. 전공의 선발에서 탈락해 본 경험이 있는 C원장은 “성적이나 술기 면에서 내 실력이 모자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를 뽑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항의를 해봤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결혼과 출산 때문’이라는 답”이라고 말했다. D원장 역시 “지금은 큰일 날 일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과에서 결혼 및 출산을 당분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레지던트 선발에 응하게 했다”고 전했다.  

치의학계에 유의미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지만, 상황이 낫다는 메디컬에서도 이 문제는 심각해 보인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자의사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여의사의 결혼과 출산육아 환경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전공의 40.3%가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 “성차별이 아주 많이 나타난다”고 응답했으며, 51.6%는 “약간 있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90% 넘는 여성 전공의가 성 차별을 경험했다고 느낀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 지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양성평등성은 전체 145개국 중 115위에 랭크돼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르완다 보다 더 낮은 순위를 보였다. 이중 전문직과 기술직 여성 종사자 비율은 86위로 상대적으로 높았으나 대학 및 직업교육 분야 채용에서는 116위로 부진한 수치를 보였다. 치의학계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 권력구조서 발생하는 성희롱 문제도

“의례적으로 학생회장은 남자로 정해져 있고, 어떤 동아리는 여자를 받지 않는다는 암묵의 원칙이 있기도 해요. 여자를 데리고 가면 술자리, 숙박 등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거죠.”
치과대학에 다니는 E학생은 강고한 남성 위주의 분위기 자체가 불편하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치과계 안팎으로 터지는 잇딴 성추문이 이를 방증한다. 2014년 한 치대 교수가 대학원생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같은 해 치대 교수가 전공의를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치과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F원장이 수련의 시절 겪은 일화는 일부의 문제지만, 권력관계로 구조화된 ‘성 모럴’의 문제로 확장할 수 있다.

F원장은 “모 전문과에서 수련을 받았는데, 회식이 우리 여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회식이 있는 날에는 병원의 스탭들에게 화장을 곱게 시키고, 2차에 가서 무릎에 앉힌다. 여성 수련의들에게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데도 거리낌은 없다.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기 힘든 분위기”라고 전했다.

치과대학 G학생은 “최근 잇따라 터진 성희롱 사건 등으로 인해 교육 등이 강화되긴 했지만, 수업 중 여성의 신체가 버젓이 드러난 사진을 자료로 활용하면서 농담하는 교수님이 있기도 하고, 이를 재밌게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性)인지’에 대해 연구한 이수정 교수(경기대)는 “전문직종에서 벌어지는 성추행은 모르는 대상이 아니라 지도학생이나 직원 등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라며 “특히 대학은 관계 자체가 권력구조라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신고하지 못하는 관행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문제는 ‘성 인지’다. 나이가 들수록 성 인지가 점점 왜곡돼 가는데, 통념이 되기 전에 사전적으로 교육을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