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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시의 세계로 날고 싶다

Relay Essay 제2133번째

내 어릴 적부터의 꿈은 의사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이 두 꿈이 다 이루어졌으니 진정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기쁘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글이다. 나는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그동안 의학(醫學)과 이과(理科)의 세계에 살아왔던 내가 그 세계를 탈피하여 새로운 문학의 세계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시의 세계로 날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내 작은 글쓰기는 내 허물을 벗는 일, 알 껍질을 부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어 준 것 같다.

이제 비로소 나는 글을 쓰며, 더불어 나누고픈 작은 몸짓을 할 때마다 나는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좀 더 자유롭게 치켜들어,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산산이 부수어진 세계의 껍데기 밖으로 쑥 내민 것 같은 느낌이다.

가슴이 따뜻한 시인이 되고 싶다. 내 시를 즐겁게 읽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아름다운 시를 쓸 것이다.

줄탁동시(啄同時) 알속에 있는 병아리가 알을 깨기 위해 여린 부리로 껍질을 쫄 때, 알 밖의 어미닭은 병아리가 빨리 알을 깰 수 있도록, 동시에 쪼아주어서 병아리가 순조롭게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내가 시의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어미닭의 부리로 도움을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태어나는 것은 늘 어렵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 길은 그렇게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아름답기도 했다. 슬프기도 기쁘기도 했다. 아직도 설렘과 떨림의 시심(詩心)이 넉넉한 나에게 경의를 보낸다. 그동안 내 글을 읽고 합평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수리샘 문학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부끄러운 내 글을 뽑아 주시고 과분한 평을 해주시며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 소중한 인연들을 오랫동안 아름다게 이어 나갈 것이다.

<이 글은 ‘문학바탕’의 신인문학상에 당선돼 작성한 소감입니다.>

============================     소공동 거리    ====================

소공동 거리
저녁이 내린다


세월과 세월의 정점에서
공간과 공간의 둔각 속에서
호텔의 붉은 역사가 흐른다


육체가 육체를 먹고사는
정신을 유배시킨 환호성 찰나 속에
무던히도 바쁜 거리, 서글픈 순정
저녁이 내린다


아스팔트 미끈한 거리 위에
소리 없이 지나가는 캐딜락 뒷바퀴 속으로
묽은 먼 향수가 휘말려 돌아간다


숱한 연인들 만나고 스쳐가고 헤어지던
어느 아담한 카페 뒤 카운터에
추억을 짓씹어 뱉고 사는
주름살 진 마담 얼굴에
오렌지 빛 저녁이 내린다


세월은 가고
떠나간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소공동 거리
저녁이 내린다


김계종 전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