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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先入見)

Relay Essay 제2136번째

출근 길 차안에서 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의사가 쓴 수필집에 실린 내용이 나오고 있었는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 노부부가 병원을 찾았다.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할머니였고, 할아버지는 보호자로 내원하셨다. 하지만 유독 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큰소리로 병원이 떠나갈 듯 이야기를 하였고,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진료를 보면서도 할아버지는 의사가 한 얘기를 모두 가로채 할머니에게 큰소리로 호통치듯 얘기 했으며 “꼭 약은 먹어야 하나? 얼마나 약을 먹어야 하나? 이 약을 먹으면 완치가 되나?” 하고 큰소리로 따지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에 기분이 상한 의사는 한 달 뒤 다시 내원한 노부부를 진료하면서, 들어오자마자 “약은 꼬박꼬박 먹었습니다”라고 얘기하는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할머니를 보며 “약은 아직도 1년 정도는 더 드셔야 돼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살짝 미소를 띄우며, 할아버지를 쳐다봤고 할아버지는 조용히 의사의 귓전에 “아내가 귀가 잘 안들립니다”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약을 1년 정도 더 먹어야 된대”라고 말씀하셨다. 

진료가 끝난 후 할아버지는 의사에게 조용히 “저희 아내가 귀가 안 들리는 걸 창피해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하며 병원을 나섰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사가 환자에게 갖는 선입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의사는 의사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환자를 처음 대할 때 진단과 치료와 같은 순수한 의학적 접근이외에 환자의 외모나 말투, 보호자의 성향까지 파악을 하게 된다. 이럴 때 의사는 저마다 가진 경험이나 느낌에 근거해 환자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심지어 이 환자가 치료를 받을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기도 하며, 심지어 진료를 피해가는 경우도 있다.

 구강악안면외과, 특히 양악수술이나 턱관절 질환을 치료 받기 위해 내원한 환자를 대하면서 환자의 외모나, 말투, 질문하는 내용 등에 따라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가령 턱관절 치료를 받는데 어머니, 아버지, 누나 등 온 식구를 동반한 환자가 왔을 때라든지, 양악 수술을 받으러 왔는데 양쪽 팔에 문신이 있는 환자를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환자를 마마보이라 생각하고 보호자의 눈치를 더 본다던지, 환자를 어두운 세계의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하여 말을 조심하던지, 때로는 수술을 꺼려할 때도 있다.

 이러한 선입견들이 어떤 때는 조심성이란 부분에서 나 자신을 환기 시키는 면도 있지만 환자를 환자가 아닌 사회의 통념에 따라 분류시키는 오만한 행동이 아닐까 한다. 이들은 가족모임이 있어 그 전에 병원에 같이 온 환자 일 수도 있으며, 어두운 세계 사람이 아니고 건실한 음식점 주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을 가진 의사에 대한 환자의 인식은 좋을 수 없다. 환자는 본인이 사회적 통념 속에서 비춰졌던 것들이 아파서 찾아간 의사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느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치유가 필요해서 내원한 환자들에게 의사의 이러한 시각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아프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의사, 특히 치과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간다. 고등학교 동창모임을 나가더라도 치과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의사,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는 인식이 만연한 것 같다. 친구들 중에는 치과에 가서 견적(?)을 받을 때마다 나에게 “이정도면 괜찮은 거냐? 눈탱이 맞는 것은 아니냐?” 라고 물어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너무나 많은 치과들이 경쟁하고 있는 상태에서 치과의사와 환자는 서로의 선입견에 대치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치과의사는 통념 속에 환자를 단순 치료해야할 대상이라는 선입견, 환자는 치과의사를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는 선입견의 대치.

 이러한 시선을 없애기 위해서 치과의사가 환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오히려 통념적 선입견에 반대로 생각하면서 환자를 본다면 환자와의 관계가 좀 더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관계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처음 오는 환자는 발치환자! 임플란트 환자! 양악수술 환자! 가 아닌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선입견을 깨뜨릴 수 있는 노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에게 처음 오는 환자를 기대하며, 그들이 가진 통상적인 치과의사의 선입견을 깰 수 있도록 나의 선입견을 지우려고 노력해야겠다.

서백건 나우미 구강악안면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