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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을 걷고 느끼며

Relay Essay 제2140번째

반포중 부자유친에서 37명이 지리산을 성삼재 휴게소에서 오르기로 하고 2016년 5월 27일 오후 10시경에 반포를 떠나 토요일 새벽 1시 반에 휴계소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3시경 출발했는데 부슬비가 부슬거려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앞 사람이 밝혀주는 등에 의지해서 선두의 아버님들 따라서 부, 자, 유, 친 4개 조로 나눠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지완이와 선두 조로 편성되어 산행을 시작했다. 경사진 돌로 만든 등산로를 걷는데 완만한 오르막으로 되어있어 계속 걸으니 땀이 났다. 부슬비는 처음엔 좀 추운 비였는데 땀이 나자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비로 바뀌었다.

지완이도 가보지 않은 지리산 산행을 걱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지 조심스럽게 잘 따라왔는데 30분 이상의 오르막 길이 계속 되자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자 땀과 비로 범벅이 된 바람막이 옷을 벗고 물기를 털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되는 노고단 고개에 도착했다. 지리산종주시점이라는 팻말이 달린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등을 배낭에 매달고 어둡고 좁은 숲속 길로 들어섰다. 완만하고 편안한 길이었지만 군데군데 등산로의 바위가 미끄러워 한 번 약하게 넘어졌다.

아무 영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팔과 손바닥에 멍이 들어서 놀랐다. 등에 비춰진 길에 꽃잎이 즐비하게 떨어져 있어서 어두웠지만 낮에 보면 아름다운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완이는 힘드는지 숨을 거칠게 쉬면서도 잘 걸어서 고마웠다. 한참을 걸어 피아골 삼거리에 도착해서 ‘자’조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자’조가 도착하자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 시작 후 2시간쯤 걸어서 임걸령에 도착했고 넓은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어둠이 물러가고 하늘은 푸른 빛으로 바뀌어 점점 사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홍근이가 가져온 누룽지를 보현이가 열심히 나눠줘서 맛있게 먹었다. 이때부터 ‘부’조와 ‘자’조가 합쳐져 함께 산행을 했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지완이는 힘드는지 언제 도착하냐고 연신 물었다. 우리가 있는 지리산 자락이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봄의 한가운데 있고, 주변 숲은 온통 연초록이다. 연초록이 주는 느낌은 편안함이다. 연초록의 숲길은 오르막이 계속되어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 지완이도 힘이 드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힘들게 걸어 반야봉과 삼도봉의 갈림길인 노루목 삼거리에 도착해서 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했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바라본 지리산 자락은 운무에 가려 운치가 있었다. 전망이 좋다는 반야봉을 거쳐서 삼도봉으로 갈까 망설이다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삼도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가 부슬거리는 상태에서 선두 조로 삼 개 도의 경계가 있는 삼도봉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삼 개 도의 경계를 표시한 구조물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좀 추운 상태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서 가져간 비상식량으로 아침을 준비했다. 박스를 열고 줄을 잡아당기자 김이 나며 뜨거워지면서 고소한 밥 냄새가 나서 신기했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따끈한 상태로 아침을 잘 먹었다.

재호가 해외출장에서 준비한 30년산 발렌타인을 한 잔씩 하니 더 기분이 좋아졌다^^아침을 먹고 후속 조를 기다리며 삼도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줄기들은 운무와 함께 연초록의 장관을 이뤘다. 산세는 부드럽고 운무는 아늑하고 그 속에 있는 나는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꿈틀거리는 상상을 할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침을 먹고 주변이 환해지자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펄펄 날기 시작했다. 지완이도 힘이 솟는지 잘 걷는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했다는 화개재를 지나 반선으로 가는 계곡길인 뱀사골로 접어들었다. 화개재는 민둥산처럼 되어있는 것을 복원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산딸기 나무 등을 식재하여 복원하고 있었다. 뱀사골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게 시작되었다. 이정표에 9.2킬로라고 표시되어 금방 도착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길을 걸었다. 조금 지나자 계곡에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연초록의 숲에서 계곡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산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 길은 줄어드는 느낌이 없었다. 점점 물 소리가 커지면서 지루함을 느끼며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하산했다.

간장소를 비롯한 병소 병풍소 등 흐르는 물 웅덩이를 구경하며 끝없이 걷고 걸었다. 아버지들은 시원한 계곡 물에 발도 담그고 세수도 하는 등 놀면서 천천히 하산하기를 바랬지만 아이들은 빨리 내려가고 싶은지 삼삼오오 짝을 이뤄 먼저 가겠다고 하고 아버지들을 앞섰다.

지완이도 “나 형들과 먼저 갈게”를 남기고 바삐 내려갔다. 나중에는 근 1시간 이상의 격차가 났다.

누군가 이 계곡이 피아골이라 이정표에 있었다고 해서 나도 우리가 내려온 계곡이 피아골인 줄 알았었는데, 느낌을 시로 표현하면서 뱀처럼 길다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느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웃었다.

가도 가도 줄지 않는 계곡이지만 시원한 물소리가 너무 좋았다. 가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면서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반선이란 이정표를 지나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에 다달아 긴 하루의 여운을 느끼며 뿌듯한 기쁨을 안았다.

37명의 아버지와 아들이 30킬로가 넘는 산행에서 아무런 사고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어서 뿌듯했다. 또한 반포중학교 ‘부자유친 아버지회’에서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에도 협찬해서 등을 밝히고, 찰밥과 볶은 김치와 피클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먹이고, 본인도 힘들 텐데 힘든 산행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나누고 배려하는 정신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체험하고 우리의 아이들이 훌륭한 시민으로 자라는데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지리산에서 부자유친을 느끼며

서왕연 서왕연 치과의원 원장


열정과 사랑으로
늦은 밤 찾아간 지리산
부자유친을 꿈꾸며
꿈처럼 알록달록한 등 따라
부슬거리는 마음으로
어두운 숲속으로
아버님들 따라서 들어간다


너른 운해 속 초록의 밀림
눈이 시린 연초록의 바다
갓 나온 산소를 마시며 폐를 달랜다
헉헉거리며 아름다운 마음들에 가슴이 시리다
구름 속에서 오월을 품고 뿌듯함에
날개가 달린다
뱀처럼 이어지는 끝없는 계곡에서
쉼 없는 물소리를 들으며
꿈처럼 끝없이 걷고 걷는다


질질 끌리는 발걸음 속에
같이 함께 했다는 뿌듯함이
지리산처럼 크다
성취의 이야기꽃이 지리산처럼 넓다
계곡에서 못다 한 물놀이를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즐기고
긴 하루에 취해서
지리산이 들려주는 자장가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