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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와 아마추어

Relay Essay 제2147번째

살며 살아가는 행복 눈을 뜨는 것도 숨이 벅찬 것도 고된 하루가 있다는 행복을 나는 왜 몰랐을까….”

어느 날 딸이 보는 TV 앞을 지나치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당시 신인가수 선발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모습만 자주 보다가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는 그 가수의 모습을 보자, 순간 나도 몰래 터져 나오는 말이 있었다. “프로다!” 그러자 딸이 하는 말… “어, 저 노래 제목이 ‘아마추어’인데요….” 내가 그 가수를 보고 “프로다!” 하고 말한 데는 남의 노래를 듣고 평가하는 모습보다는 직접 노래하는 모습이 진정 ‘그’다워서 한 것이었는데, 그 ‘프로’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이 ‘아마추어’였다니 신기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부분 프로는 긍정적으로, 아마추어는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나는 여기서 내가 아마추어일 때의 행복을 말하고 싶다. 학교 졸업 후 꽤 오랜 외유를 하여서 동기보다 훨씬 늦게 개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리에서 진료한지 벌써 만 20년이 되어간다. 지금도 진료실에서는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진료 시간 이후에도 업무와 걱정이 많았던 개원 초기에 비하면, 연차가 쌓이면서 나도 슬슬 취미생활을 찾아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는 생기게 되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2년여 전부터 성악 레슨을 받는 아마추어 생활이 시작되었다. 1주일에 30분 있는 레슨 시간을 제외하고는 평소에는 주어진 성악곡을 들여다보지도 않지만, 거의 매 분기별로 발표회가 열리기 때문에 최소한 발표회를 앞둔 몇 주간은 바짝 연습을 안 할 수가 없다.

연습과 소소한 준비를 할 때면 내가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나 하는 마음도 들지만, 적당한 스트레스에 오히려 삶의 활력을 얻기도 하거니와 매 발표회 후에는 홀가분함과 더불어 작은 성취감마저 느낀다.

실수는 아마추어의 특권일진대 내가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부르리라고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도 한다. 나 또한 동료 아마추어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 소절 씩 또박 또박 표현하는 그들의 진지함에 감동하고, 실수도 예쁘게 보곤 하는데, 무대에 선 나를 보면서 다른 아마추어 동료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었다.

한번은 연로하신 친정 엄마를 발표회에 초대했는데 내 노래를 들으시고 좋아하시면서 ‘우리 딸이 제일 잘 부르더라’고 연신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마추어들은 모두 노래를 제일 잘하는 딸이고 아들이고 며느리이고 사위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자식이고, 사위이고, 며느리라 하여도, 아마추어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황당하리만치 후한 칭찬을 부담 없이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곳에는 예외적으로 프로보다 더 뛰어난, 정말 ‘제일 잘 부르는’ 아마추어 분이 따로 계시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고시절 함께 합창단 활동을 했고, 음대에 진학하여 성악을 전공한 한 친구에게 나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 친구는 나를 격려하면서 자신은 이제 절대로 대중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프로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친구 또한 행복한 아마추어가 되어 있었다. 바로 아마추어 사진작가이면서 작은 신문사에 소속된 기자이기도 하단다. 하긴 그 친구는 학창시절 빼어난 문학소녀이어서 교내외 글짓기 대회의 상을 휩쓸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한때 피아니스트나 성악가를 꿈꾸었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다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따져본다. 프로는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어떤 일을 할 때 돈을 쓰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먼저 프로(치과의사)로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어떠한 아마추어도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진료실에서 때론 프로답지 못하기도 한 것 같다. 또 진화하는 치의학 이론과 기술을 따라잡지 못해서 어제는 프로인 듯 했다가도 오늘은 그 분야의 프로가 아니기도 하다. 내가 프로이기에 아마추어로서의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역으로 나의 취미는 나의 프로로서의 활동에 대한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아마추어일 때도 행복하지만, 내가 프로이기를 추구하고, 프로로 존재하고자 노력할 때, 또한 부족한 나를 프로로 믿고 찾아주어서 나에게 긴장감을 주는 고마운 환자분들이 계셔서 나는 진정 행복하다.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하고, 내가 프로가 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나의 부모님과 모든 분께 새삼 감사드린다.

에필로그. 금요일 늦은 시간에 치의신보 기자님과 통화를 했다. ‘주말인데’ ‘어려운 부탁’을 하겠다는 기자님의 간절함에 나는 그 ‘어려운 부탁’이 무엇일지도 모르면서 마음으로는 무조건 ‘예’라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부탁’에 대한 응답의 결과가 이렇게 ‘릴레이 수필’에  졸필을 올리는 것이 되었다. 학창시절 가장 괴로운 시간이 교내 백일장 시간이었던 내가 글을 다 쓰게 되고, 더군다나 극소수만 알고 있는 나의 비밀인 취미생활을 지면에 털어놓게 하였으니, 한 번의 통화에 무조건 ‘예’라는 대답을 하게 하신 기자님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이십니다. 아니, 제가 졸필임을 짐작 못하셨으니 프로답지 않은 실수를 하신 것일까요.


김효은 우정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