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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어느 여름밤의 회고록

Relay Essay 제2149번째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찾은 처서(處暑)의 사전적 의미.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즉, 더위가 그친다는 뜻.

연일 일기예보에서는 입추다, 처서다 하면서 이내 가을이 올 것처럼 얘기하지만 지금과 같은 더위라면 12월에도 반팔을 입고 다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좀 오바인가?

일기예보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불볕더위’, ‘가마솥 더위’, ‘기상관측 사상 최고의 무더위’, ‘한반도 불가마’. 올 여름 살인적 더위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더위를 표현한 최상급 단어들이 부끄럽지 않다.
피해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예전엔 가끔 태풍도 와서 그럭저럭 더위를 좀 날려 주곤 했는데, 올해는 한반도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무더운 기단에 막혀 태풍이 접근을 못하고 있다니 역대급 더위이긴 한가 보다.

오늘도 낮 최고 기온 36도. 지열 때문에 체감 온도는 거의 40도 육박.

점심 먹으러 잠깐 나온 지 5분 만에 머리에 송글송글 땀이 찬다. 점심 메뉴보다 빨리 더위를 피해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 잠시 땡볕을 걸으면서 올해만큼 가을을 기다린 적이 있나 싶어 지나간 과거 여름들을 생각해 본다.

대략 여름 휴가가 지나면 선선한 바람 불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력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고만 고만한 더위였는지 그다지 더웠다는 생각은 없다.

정신없는 하루가 가고 집에 오자마자 요즘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친구가 눈에 띈다.
그 이름하야 ‘선풍기’ 그래도 더위를 좀 식혀 줄 가장 만만한 놈 중 하나다. 그나마 가성비 최고였지만 오늘따라 헐떡거리며 더운 바람을 연신 내뿜는 선풍기가 이런 얘기를 한다.
“8시간 째 풀가동 입니다. 저 좀 쉬면 안될까요?”
선풍기 뒷목을 잡아보니 뜨끈 뜨근. 괜히 미안해진다.
“그래. 너도 하루종일 고생이 많다” 하며 큰 마음 먹고 애지중지 모시고(?) 있는 우리집 가보, 에어컨을 켠다.
차가운 바람을 내뿜는 에어컨을 보니 일단은 선풍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1시간 쯤 켜니 그마나 좀 살만하다. 그런데 갑자기 뉴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올 여름 누진세 폭탄!” 사정없이 돌아가는 계량기 확인.
선풍기에 뒤질 새라 에어컨도 이런 얘기를 하는 듯하다.
“주인님 저 아주 비싼 몸입니다. 전기료 각오는 하셨죠?”
전기료 폭탄을 생각하니 에어컨 찬바람 하나하나가 결처럼 느껴지며 10원짜리 동전 수십개가 순간 순간 내 피부를 때린다. 결국 2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에어컨 임무 끝.
샤워를 좀 하면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믿었던 수돗물 온도도 미지근하다 못해 따뜻하다.
대책이 전무.

한동안 티비를 넋 놓고 바라보다 문득 점심 때 아파트 분수대에서 시원하게 물을 맞으면서 뛰어 놀던 어린 아이들이 생각났다. 나도 저 시절에는 분수대에서 좋다고 뛰어 놀았겠지. 잠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부질없는 욕망을 자제했다.
이렇게 2016년 8월의 어느 처자의 무더운 여름밤이 대책없이 지나가고 있다.

일기예보만큼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많은 것도 없지만 혹독한 무더위가 지난 그해 겨울에는 그 만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 생각하고, 지금은 무더운 불볕더위보다는 매서운 한파가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간사한 사람의 마음일까? 
 정주희 바이머파마저먼 마케팅부 치과위생사